[천자춘추] ‘도박과 사행산업’ 호랑이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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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호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서커스에서 조련사가 호랑이와 연인처럼 포옹하고, 호랑이 입속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고 있는 TV 장면을 지속적으로 지켜봤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로 지금, 그 아이가 눈앞의 실제 호랑이와 마주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의 입장에서 줄무늬 담요 같은 호랑이의 외형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고 싶은 대상일 수 있다. 도박과 사행산업은 호랑이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위험하다. 우리나라는 개인 간의 도박은 형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고 있지만 국가가 법률로 허가한 일곱 가지 사행산업(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토토), 소싸움경기 등)은 경제 활성화와 지역복지 증진, 건전한 레저문화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진흥하며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 2019년에는 우리나라 사행산업 매출액이 22조원을 초과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인 사행사업체는 큰돈을 벌었고 정부도 큰 액수의 조세 수입을 얻었다. 정부는 이들로부터 거둬들인 저항없는 조세에 중독돼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 3년간 코로나19 비대면 상황에서 사행산업의 매출 감소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정부는 2021년 경륜과 경정의 온라인 발매를 허용했고 2023년에는 경마의 온라인 발매도 허용했다.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이제 국가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도박을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서커스의 조련사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듯이 도박을 통해 대박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누군가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고, 도박중독자의 삶을 살아간다. 도박중독은 개인과 가족에게 경제적 파산 및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고 우울증, 자살, 별거와 이혼 등의 심각한 삶의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윤리의식을 무너뜨리고 생산성 저하, 실업 가능성 증가, 살인, 폭력, 사기, 절도 그리고 돈세탁과 고리대금업 성행 등의 범죄를 야기하기도 한다.

 

국가기관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도박중독 상담치유 공공기관인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매년 9월17일을 ‘도박중독 추방의 날’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도박중독의 폐해와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도박중독 추방의 날’이 매년 진행되는 형식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도박중독 문제를 공중보건의 문제로 인식하고 중독 문제 해결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날이 되기를 희망한다. 도박과 사행산업이라는 호랑이를 규제하고 사행산업 이용자인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 정부는 사행산업에서 나오는 조세를 공익적으로 사용하기 바란다. 도박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원인자 부담 원칙’의 사회정의 개념에 따라 도박중독을 예방하고 도박중독자를 치유하는 일에 더 많은 예산과 전문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대상자(청소년, 노인, 도박중독자와 그 가족 등)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도박과 사행산업이라는 호랑이를 길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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