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북-러 정상회담의 전략적 메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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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9월12일부터 17일까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러시아 방문이 있었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군사협력 가능성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향후 북-러 협력 양상에 따라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는 큰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러는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군사협력’ 가능성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국제적 주목 효과를 한껏 누렸다. 그렇다면 북-러 정상회담 행보 속 전략적 의도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견제에 있어 북-러의 전략적 일치다. 러시아는 ‘장기적 소모전’으로 전환된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데 북한을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대부분 포격전에 집중되면서 장기간의 사상자 발생, 장비 손실 및 탄약의 필요성이 절박한 상황이다. 양측 모두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장비 수리 및 교체, 최전선 병력 순환, 포탄 및 탄약 조달에 급급한 국면이다. 북한은 제재를 감수하면서 러시아의 소모전을 지원할 안정적인 후방 공급기지로서 최적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한 국가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와 전세의 불확실성은 미국 대선 국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공화당 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팽배하다. 북-러의 군사협력 메시지는 미국 대선 국면을 염두에 둔 ‘심리전’ 차원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러 군사협력을 통한 대미 견제는 동북아로도 연결된다. 북한에 대한 핵·미사일 핵심기술 이전 가능성을 전면에 부상시킴으로써 동북아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경고의 성격도 띠고 있다. 우크라이나 유럽 전선과 동북아 전선 양쪽을 연계하는 대미 견제 차원에서 러시아는 ‘북-러의 군사협력’ 메시지를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선 북-러 군사 협력의 가능성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통한 대미 억제 의미를 갖는다. 무기에 대한 기술 지원뿐만 아니라 동해상에서의 북-러 연합훈련을 통해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응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 한편 북-러 밀착을 통해 북한의 대중국 의존성을 분산해 군사·경제적 협력 창구를 넓히는 의미도 갖는다.

 

둘째, 실질적인 북-러 군사기술적 협력의 효과다. 단기적으로 한미일에 대응하는 북-러 협력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응한 동해상의 북-러 해상연합훈련, 공군 전력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는 북한에 대한 대공미사일체계 지원, 얼마 전 북한이 공개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개조에 대한 기술적 지원, 군사 정찰위성 개발에 대한 지원 등이다. 이 같은 지원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의 직접적 위반을 교묘하게 회피할 수 있는 ‘협력’이기도 하다. 향후 1년여 미국 및 중국의 반응, 북한의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기여 수준 등에 따라 핵·미사일 핵심기술에 대한 직접적 협력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러 양측의 협력은 유동적일 수 있다. 특히 중국 변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북한의 대러시아 군사 의존이 높아지고 경제협력이 확대되면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 감소를 우려할 가능성이 높다. 북-러의 밀착은 중국이 통제하기 힘든 외교적 공간이 될 수 있다. 결국 향후 중국이 북-러 관련 어떠한 입장과 외교적 태도를 취하느냐가 북-러 밀착 수준을 가늠할 중요한 변수다. 그런 측면에서 조만간 있을 중-러 정상회담은 중국의 입장을 가늠해 볼 중요한 기회다. 이 회담 결과와 예상되는 푸틴-김정은의 후속 정상회담이 정세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러의 군사협력이 단기적 이해에서 중장기적 ‘전략적 일치’로 발전한다면 그 영향은 클 것이다. 북한의 대러시아 군수지원이 본격화되면 우크라이나전쟁의 전세 및 유럽의 안보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년여 남은 미국의 대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북-러 군사협력은 한미일 대북 억제력 강화, 중국의 대미 견제 차원의 군사적 활동을 자극해 동북아 안보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핵·미사일 기술 지원이 가시화될 경우 미국의 동북아 역내 억제력은 강화되고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는 보다 첨예화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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