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삶의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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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

늦가을 하늘 대청봉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과 우수수 지는 낙엽을 보면서 붉은빛의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한다. 여름날 소나기 등으로 풍성하던 물소리는 얇아지고 쌀쌀한 날씨 속에 하늘은 청명해 더 넓게 보인다. 또 이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한다.

 

독일의 영적 지도자 안젤름 그륀 신부는 황혼의 미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가을에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는 일이 중요하다. 업적을 쌓는 대신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했다. 인생의 가을은 깊이를 생각하고 이치를 찾아가는 길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여름 같았던 젊음이 가고 소중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모든 계절이 나름대로 매력을 지니고 있다지만 가을이 풍요로운 계절이라 해서 저절로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 땀 흘려 가을에 거둬들이듯 늘 자신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스스로에게 진실 되게 살아야 한다. 가을이 열매를 풍요롭게 하듯 말이다.

 

만물은 만물로서 무르익고 아름다운 것은 오색 단풍과 함께 영원한 나라를 꿈꾸게 하는 것이 인생의 가을이다. 인생의 사색 속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아무것도 구별하지 말라고 삼천 가지가 생각 하나에 있으니 찰나에 모든 것이 이뤄진다.

 

본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석가모니가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법화경에 그의 가장 성숙한 사상이 담겨 있다. 우리의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상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해야 한다. 놓아 버림을 배우는 때가 인생의 가을이다. 어둠은 빛으로 풀고 미움은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 삶이 비록 힘들어도 가슴에 넉넉한 여백이 있어야 한다.

 

심원한 풍광 속에 자리한 소요산사 자재암을 찾아 때 묻은 영혼을 씻고자 하는 사람들. 그곳은 영적인 안식과 정결함이 있다. 소요골 맑은 물에 마음을 비우고 있노라면 은은히 들려오는 독경소리 인생이라 생각하면 자연의 모습에 잠기게 된다.

 

수나라 때 달마 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520년 마침 혜가 스님(487~593)이 달마 스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 “너의 불안한 마음을 여기 손바닥에 올려 보아라. 그러면 편안하리라.” “올려 놓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럼 너의 마음은 편안하게 되었다.”

 

돌부리에 넘어졌으면 그 돌부리를 잡고 일어나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힘들다고 괴롭다고 밖에서 찾은들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날마다 기쁨만을 채울 수 없다. 때로는 조용히 빈 마음으로 꿈과 희망도 담아야 하고 슬픔 속에서 내재된 새로운 내일의 가치를 창조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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