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앞두고 영국의 한 마을에서는 유물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쟁이라는 죽음의 불안감 앞에서 유물 발굴 작업에 열중하며 삶의 의미, 죽음,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디그(The Dig)의 내용이다. ‘천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극 중 인물의 질문에 나는 엉뚱하게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올랐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쓰레기 산에서 쓰레기를 먹고 죽는 스리랑카 코끼리의 모습을 담았다.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물을 찾다 비닐 및 플라스틱을 같이 흡입하기도 하고, 쓰레기의 자극적인 맛에 중독된 충격적인 모습에 결국 채널을 돌리고야 말았다.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까지 표현했던 플라스틱은 결국 독이 됐다. 이에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논의하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협상위원회가 진행 중이다. 생산을 포함한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줄이고, 근본적으로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기 위함이다. 한국 정부는 마지막 회의인 제5차 회의 개최지를 한국으로 유치했다며 자화자찬하지만 실제 자원순환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며칠 앞두고 돌연 유예했고 세종, 제주에 한정한 시범사업으로 축소했다. 급기야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자체 판단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강화했고 1년간의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24일부터는 위반 사항 적발 시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 불과 보름 남짓 남겨둔 시점에 정부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지원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일회용품 저감 정책에 손을 놓은 것이다. 이처럼 일관되지 않은 정책으로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민들은 분노했다.
한국 정부는 현 인류와 미래세대를 위해 전 생애 주기에 걸친 플라스틱 감축 목표 설정, 구체적인 로드맵과 함께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먼 미래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남길 것인지, 인류의 지혜를 남길 것인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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