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고위급 군사협력 채널 복원과 마약금지 협력 강화 및 교육·문화·비즈니스 분야 교류 확대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대만 문제와 대(對)중국 기술통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확인했고, 한반도 문제도 회담 의제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번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동안 치열하게 전개된 미중 전략경쟁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중 간 ‘핵심이익’을 둘러싼 전략경쟁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본격화됐고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됐다. 전략경쟁의 분야도 무역통상에서 시작해 이데올로기와 대만 문제 및 첨단 과학기술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급기야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을 강조했고 중국도 핵심 이익에 대한 절대 양보 불가 방침을 고수하면서 양국 간 전략경쟁은 갈수록 심화됐다.
하지만 올해 5월 이후부터 미중 전략경쟁은 서서히 완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재무장관, 상무장관 등이 차례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과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했다. 중국도 미국의 유화 제스처에 적극적으로 반응함과 동시에 자국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왕이 외교부장은 10월 미국을 방문해 대만 문제와 핵심기술 봉쇄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 전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조율을 진행했다.
이처럼 미중이 긴장 완화를 통해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이유는 양국이 처한 국내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 전략이 미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이로 인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도 작년 11월 리오프닝 이후 다양한 경기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 급감 등으로 인해 실물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장기화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략경쟁을 잠시 멈추고 국내 문제에 치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미중관계 개선 분위기는 무역 및 산업 분야에 이미 반영되기 시작했다. 올해 11월 초 중국 국영 곡물업체는 미국으로부터 약 70만t의 대두를 구입했고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도 중국시장 공급용 인공지능(AI)칩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AI에 대한 정부 간 대화 강화에 합의했고 중국이 주최한 미국 기업인들과의 만찬에 글로벌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대거 참석함으로써 대중국 투자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미중 간 핵심 이익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라는 전략경쟁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책임감 있는 경쟁 관리”로 설명했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국 간 경쟁은 시대의 대세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즉, 미국은 경쟁을 말하고 중국은 협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 기간에 개최된 양국 상무장관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미국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이라 협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여줬다. 대만 문제도 내년에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와 미국 대선 등을 앞두고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최근 미중관계에서 나타난 전략경쟁의 ‘안정적 관리’ 모드는 언제든지 다시 ‘경쟁 혹은 갈등 심화’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는 곧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 및 불확실성에 따른 다양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대내외적 환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에 근거해 특정 국가에 편향된 외교에서 탈피, 국익 기반의 ‘실리외교’를 제대로 추진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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