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236원

image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 관장

집 앞 편의점을 몇 바퀴 돌았다. 236원으로 살 수 있는 게 있을까? 예상대로 236원으로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300원이 있다면 그나마 볼펜 한 자루를 살 수는 있었다. 600원을 손에 쥐고 있다면 우유 맛이 나는 음료수 하나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었다. 천원이라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대여섯 가지로 늘어난다. 하지만 삼각김밥은 언감생심. 애석하게도 236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찮은 돈이었다. 그럼 236원은 무슨 돈일까? 경기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경기도립 박물관·미술관 7곳의 2024년 총사업비로 예정된 33억원을 1천400만 경기도 인구수로 나눈 돈이다. 즉, 내년도에 경기도민 1인당 236원 정도의 예산으로 경기도립 뮤지엄들에서 전시도 하고 교육도 하고 소장품도 관리하고 관람객 서비스 등등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기도민 1인당 236원의 예산으로 지속가능한 지식 생산과 활용의 장소가 돼야 함은 물론 지역의 복합문화공간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경기도립 뮤지엄들의 임무는 실로 가혹하다. ‘문화로 가꾸는 살기 좋은 경기도’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경기도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인 경기도립 뮤지엄들의 실상은 ‘236원’이 대변해 주고 있다. 이쯤되면 경기도립 뮤지엄들은 사실상 존립 자체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립 뮤지엄은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미술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백남준아트센터, 실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등 7곳이다. 경기도자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경기도자박물관과 경기도자미술관 등을 포함해도 1천400만의 경기도민이 좋은 전시를 관람하고 재밌는 교육프로그램을 향유할 기회를 얻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숫자다. 더구나 경기도립 뮤지엄들의 사업 예산은 무슨 이유에선지 경기가 좋아도 줄어들고, 경기가 나쁘면 더 줄어들어 매년 이제는 바닥이겠지 하는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박물관들은 이미 비교 대상이 안 되게 멀리 달려가고 있고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 봐도 경기도립 뮤지엄들의 사업 예산은 맨 끝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대단히 안타깝지만 ‘236원’이 말해주는 경기도 문화 현장의 현실이다.

 

얼마 전 경기 김포의 한 구석기 발굴 현장을 찾았다. 개발을 목전에 둔 산업단지의 진입로를 닦는 건설현장이었다. 여기저기 어지럽게 붙어 있는 현수막에는 ‘경기도는 싫다, 서울이 좋다’라는 구호가 선명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기도를 버리고 서울로 가고 싶다는 그 애절한 소망의 한끝에는 ‘236원’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도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래도 이번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행정사무 감사에서 경기도립 뮤지엄들을 이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경기도민의 문화 향유권 보장 차원에서 큰 문제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삼각김밥 하나는 사 먹을 수 있는 예산 폭탄을 꿈꿔 본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