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주거 안정 대책 헛구호...추위·안전 위협 가건물에 거주 지자체 단속 의무·관리 근거 없어 노동부 “점검·단속 강화 방안 고민”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늘어선 포천시 가산면 일대. 사람이 살 것이라 생각지도 못할 이곳은 지난해 8월 비전문취업비자(E9)로 입국한 네팔인 세마르씨(가명·27)가 사는 숙소다.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은 보일러가 없는 탓에 발이 시릴 정도로 냉골이었다. 살을 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설치한 검은 천은 추위는 막지 못한 채 햇빛만 막아 온 방이 곰팡이로 뒤덮인지 오래였다. 세마르씨는 “두꺼운 점퍼 3~4개를 껴입고 자는데도 너무 춥다”며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까지 덮고 있어야 겨우 잠이 들 수 있는 정도”라고 호소했다.
여주시에서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인 보파씨(가명·26)도 비닐하우스를 불법 개조해 만든 숙소에서 살고 있다. 제대로된 시설 하나 없는 이곳에서 보파씨는 매일 목숨을 위협 받고 있다고 했다. 각종 인화물질과 비닐이 뒤덮인 이곳에서 따뜻함을 줄 수단이 ‘화목보일러’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퇴근하면 너무 춥긴한데, 불이나면 어떻게 하나 싶어 보일러 틀기도 두렵다”고 토로했다.
지난 2020년 E-9 비자로 포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인 속헹씨가 추위에 숨진 사건 이후 나온 ‘이주노동자 주거 안정 대책’이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여전히 곳곳에서 불법 비닐하우스를 이주노동자 숙소로 쓰고 있는데도 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경기도내 E-9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는 10만9천249명(37.4%)이다. E-9비자는 비전문 직종인 제조업, 건설공사업, 농업, 축산업 등에 종사하려는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비자다. 도농 복합지역인 도의 특성상 이주노동자는 각 분야에서 꼭 필요한 이들 중 하나다.
이 같은 상황에도 이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기만 하다. 인권단체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지금도 가축이 살법한 가설건축물에서 30만~40만원씩 내고 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며 “문풍지 뚫린 곳에서 살다 추위를 못 견디고 뛰쳐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포천이주노동센터를 운영하는 김달성 목사는 "지난 2020년 속헹씨 사망 이후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거 개선을 위한 제도를 마련했음에도, 현장 근로자의 주거 개선을 위해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한 상황"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단속 등 현장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이 때문에 생긴 사각지대에 많은 근로자는 여전히 불법 가설건축물에 기거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비자 연장을 희망하고 있어 항의 한 번 못한 채 속앓이만 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비자별로 관리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E-9 이주노동자는 도에서 일해도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도가 지난 3월 만든 ‘경기도농어업 외국인근로자 인권 및 지원 조례안’ 역시 무용지물이다. 지자체의 지원범위는 농·어번기 등에 일시적으로 허가하는 계절근로자(E-8)에만 한정돼 있어서다.
이 때문에 불법으로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숙소를 쓰고 있음에도 지자체에서는 단속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계절근로자가 중심 대상인 외국인 공동숙소 외 다른(E-9 이주노동자) 건 관리 근거도 없고, 지원 계획도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주로 농촌에서 주거환경 문제가 생겨 지속적인 단속을 하고 있지만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도 알고 있다”며 “지도점검이나 단속 강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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