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용인소방서 화재조사관(소방위)
며칠 전 뉴스에 경북 문경시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에서 동료 소방관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공장에 남은 직원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즉시 투입된 구조대원의 사고 소식이었다. “우리가 만약 이 사고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물음에 같이 있던 동료들의 대답은 한 치 망설임이 없었다. “당연히 투입해야죠”로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 소방관이라면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고는 어느 곳에서든 재발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소방 현장은 긴박하고 복잡해 때때로 소방관의 희생을 담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지휘관은 소방관 투입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난제(難題)’와 대면한다. 그럼 이 난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론적인 해법은 소방관을 투입하되 플래시오버, 백드래프트 등 화재 특이 현상이나 붕괴를 빠르게 판단해 적소 절묘하게 소방관을 철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순간 급변하는 화재 현장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육가공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2011년 서울 홍제동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 홍제동 주택 화재는 아들이 대피하지 못했다는 말에 소방관이 투입돼 6명이 순직한 사례다. 이 두 화재의 닮은 점은 당시 최성기였던 건물에서 대피하지 못했다는 정확하지 않은 제보로 소방관이 긴급 투입된 사고라는 것이다. 이 공통점을 통해 우리는 소방관을 살리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집결(集結)’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대피 후 사전 약속한 장소에 집결해 인원 파악 후 소방대에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 모든 사람이 대피가 완료됐다면 소방관이 무리하게 투입되지 않아도 되고 반대로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좀 더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다.
2022년 5월 경기 이천시 의류 보관 대형물류창고 화재가 있었다. 이번 경북 문경시 육가공 공장보다 규모가 4배 이상 컸던 창고 화재지만 142명의 직원은 화재를 인지하고 대피해 사전 약속된 집결지에 모여 인원 파악을 하고 신속하게 소방대에 전원 대피 완료했다고 전달해 줬다. 이에 소방대는 초기 내부 인명 검색보다 화재 진압에 주력할 수 있었다. 신속 정확하게 인원 파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했다. 평소 대피 훈련 시 집결지에 모여 인원 파악하는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고 했다. 경기도 이천시에 대형물류창고 화재가 잦다 보니 실전과 같은 훈련했다고 한다.
집결은 생명을 구하는 핵심이다.
대피 후 집결은 소방관의 사고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동료들이 화재 현장에 고립돼 있을 때 긴급 구조할 수 있다. 경북 문경시 화재 현장의 소방 영웅을 추모하며 가정과 회사에서 화재 시 집결 장소를 지정하고 대피 훈련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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