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 관장
지난 2월19일은 경기도에 소재한 박물관 미술관 121곳이 회원으로 활동 중인 (사)경기도 박물관협회의 창립 20주년 기념일이었다.
경기도박물관의 기념식장에는 20년 전 협회 창립에 한 뜻을 모았던 사립박물관·미술관 관장님들이 많이 참석했다. 우리나라 사립박물관계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수십년간 시간과 돈을 써가며 집요하게 박물관의 가장 기본인 소장품을 모아온 수집가 정신이 살아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헌신으로 차곡차곡 쌓여온 사립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은 우리 사회를 문화의 힘으로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많은 것이 변해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 미술관들도 시대적 소명 의식을 가지고 컬렉터의 열정을 불태운 1세대에서 박물관이라는 가업을 승계하는 차원의 2세 경영 체제로 바뀌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립박물관의 직계 자녀들에 의한 2세 경영을 바라보는 현실은 우려되는 부분들도 있다. 사립박물관 운영을 시간과 돈이 남아서 골동품이나 사 모으는 한가한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폄훼하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가업 승계가 되지 않고 문을 닫는 사립박물관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 수십년간 국가가 전부 책임질 수 없었던 지역 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던 사립박물관의 순조로운 세대교체는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다.
사립박물관의 전문 인력을 지원해 주는 정부 사업 심사차 설립자의 직계 자녀들을 심층 면접해 본 경험이 있다. 설립자 관장의 직계 자녀들을 박물관 직원으로 채용해 국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생긴 제도였다. 하지만 그때 만난 박물관 2세들은 부모 잘 만나 박물관이라는 사업체를 물려받는 소위 ‘금수저’들이 아니었다. 박물관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부모님의 열정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꿈도 미래도 희생해 가며 가업으로 박물관을 물려받겠다는 또 다른 차원의 열정을 가진 분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사립박물관들은 직원 채용이 매우 어려운 지방의 격오지에 위치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립박물관이 부모의 뜻을 물려받겠다는 자녀들이 없으면 아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립박물관 2세대들은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지원을 받더라도 몇 차례 인력 채용 공고를 내도 해당 박물관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을 때 마지막 단계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열악한 환경의 사립박물관에 최소한의 인건비를 지원해 주는 것도 꼭 필요하지만, 문화 기관 운영자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00년 가게 인증 제도라는 게 있다. 100년 이상 가게를 잘 유지해 달라는 염원과 격려의 제도다. 100년 가게처럼 존경과 사랑을 받는 100년 된 사립박물관, 미술관 보유국이 되기 위해선 현장의 깊은 속사정을 제대로 반영한 지혜로운 정책 시행이 필요할 것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