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정한 필수의료를 위해

신정화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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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수의료’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런데 필수의료에 대해 논하기 전에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과연 무엇이 ‘필수의료’일까? 대한의사협회에서 간행한 ‘필수의료 중심의 건강보험 적용과 개선방안’에서는 필수의료를 진료가 지연될 경우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료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뇌출혈, 심장마비 등의 응급질환, 암 같은 중증질환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과 같이 오랜 기간 꾸준히 관리해야 할 만성질환에 대한 의료 행위 모두 필수의료로 볼 수 있다. 실제 질환의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 행해지는 의료의 거의 모든 부분은 필수의료나 다름없다.

 

근래에 의료를 필수나 비필수의 범주로 나누는 것은 정책상의 필요가 있을지는 몰라도 환자와 의료진에게 응급, 중증질환 치료만이 필수의료이며 상대적으로 병의 진행이 잘 드러나지 않는 만성질환 관리 및 모든 질환의 예방을 책임지는 1차 의료는 그렇지 않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현재 의료 체계의 실정과도 맞지 않고 환자의 건강 증진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에는 병이 난 후 병원을 찾아 치료를 하는 행위를 ‘의료’라고 했다면 이제는 병이 생기기 전에 위험인자를 제거하는 행위로부터(1차 예방), 병이 생겼지만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중재하는 행위(2차 예방), 그리고 병이 생긴 후 치료를 하여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3차 예방) 모두를 의료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30년 이상 하루 한 갑씩 흡연을 한 성인이 금연치료에 대해 상담을 받는 것은 ‘1차 예방’에 해당된다. 이를 통해 심장마비와 같은 심혈관질환이나 만성폐쇄성 폐질환 등에 걸릴 위험을 제거한다.

 

이 사람이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통해 기본적인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2차 예방’이다. 2차 예방은 병이 생긴 증거를 발견해 병이 드러나기 전에 가능한 빨리 발견, 치료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만일 이 사람이 어느 날 산책 중 가슴이 아프고 호흡이 불편해 응급실을 찾았는데 심전도에 이상이 발견돼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키는 치료를 받게 됐다면 이는 ‘3차 예방’에 해당된다.

 

병의 진행은 ‘병 없음’에서 ‘병이 갑자기 생김’으로 완전히 구분될 수 없고, 그 원인부터 결과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점차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이 연속성 안에서 어느 시점에 어떤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지를 적절히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매일 한 갑씩 흡연한 지 10년된 30대 여성에게 매년 흉부엑스레이 촬영을 권유한다면 환자를 불필요하게 방사선에 노출시키는 과잉진료가 되겠지만 매일 한 갑씩 흡연한 지 30년이 넘은 70대 남성에게 저선량 흉부 CT 대신 흉부엑스레이를 권한다면 병을 놓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오랜 기간 흡연을 해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있을 때 이에 대한 상담을 위해 어느 과를 가야 할지부터 막막할 수 있다. 흡연이 심혈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니 순환기 내과를 가야 할지, 가끔씩 기침이 날 때마다 불편하니 이비인후과나 호흡기 내과를 가야 할지 알기 어렵다. 어쩌면 이 환자는 갈 수 있는 모든 과를 다니면서 각 과에서 환자에게 제공하는 모든 검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분과로 나눠진 의료를 효율적으로 적정하게 사용하기 위해 생긴 제도가 바로 1, 2, 3차로 나눠진 의료전달체계다.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적절한 장소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건강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3차병원에 감기 환자만 많고 중증호흡기질환 환자가 적다거나, 가까운 동네의원에 당뇨합병증이 심환 환자가 많고 3차병원에는 당뇨를 예방하고 싶은 사람이 다닌다면 이는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도, 건강을 효과적으로 증진한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1차 진료는 질병이 발생하기전 또는 질병 발생 후 환자가 최초로 만나는 의료다. 즉 환자와 환자의 가족 더 나아가 지역사회를 잘 아는 주치의가 환자가 앓고 있는 질병의 종류와 관계없이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하고 필요시 특정분과의 전문의가 있는 2차 또는 3차의 상급병원에 의뢰해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다.

 

요즈음 필수의료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고 응급 상황에서 해당 과의 의사가 없어서 또는 병상이 부족해서 제때 치료를 못 받을 뻔한 몇몇 위기들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위중한 상황에 긴급하게 필요한 것만이 필수의료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실제로 의학은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기 전에 예방하는 쪽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경증에서 시작하지 않은 중증질환도 없다.

 

생명과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한 모든 필수의료 행위는 중요하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건강할 때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아플 때는 적재적소의 치료로 연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내 집 주변의 동네의원, 1차 진료 기관이다.

 

모든 건강 상태를 포괄적으로 진료하는 1차 의료, 1차 진료를 목적으로 하는 동네 의원, 여러분의 주치의를 표방하는 가정의학과를 통해 질병 치료와 건강 증진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비용 절감까지 달성하는 진정한 의미의 필수의료가 널리 행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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