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야~ 참 좋다. 여기 미니신도시 들어서면 아주 대박이겠어요.”
몇 년 전 전곡리 구석기 유적을 둘러보던 선출직 공무원 몇몇이 매우 아쉬워하며 한 말이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말이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한탄강변의 경치 좋은 곳 77만㎡(약 23만평)를 차지하고 있으니 건설과 교통 정책을 담당하던 그들 입장에서는 미니신도시가 들어서기에 좋은 곳이었다. 만일 이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먹도끼가 출토되지 않았다면 전곡리 유적 일대에는 진즉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섰을 것이다.
문화재가 개발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요즘은 23만평은커녕 2, 3평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그때 (1979년)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너른 면적을 사적으로 지정한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사적으로 지정된 구역 내의 개인 땅을 국가가 모두 매입했고 경기도에서 전곡선사박물관까지 건립했으니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발견과 보존은 ‘한탄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 세계적인 문화재 활용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가 들어서야 할 곳에 문화재가 보존된 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문화재는 그저 나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개발의 걸림돌일 뿐이고, 선출직 공무원들에게는 내 표를 깎아 먹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문화재, 개발, 발목의 세 가지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문화재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도심의 개발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의 원흉이라는 기사들로 가득했다.
지금의 시대정신이 문화재 보존만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등한시한 문화재 보존 정책이 결국 문화재는 개발의 걸림돌일 뿐이라는 인식을 만들었고 마침내 문화재 보존의 결정적 장면은 법원의 판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국면까지 맞이하게 됐다. 그래서 여전히 개발 붐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개발과 보존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문화재 정책은 어렵지만 중요한 과제다.
문화재를 파헤치며 아파트를 짓게 되더라도 애물단지가 사라져 속시원하다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사는 아파트를 위해 사라진 문화재에 경의를 표하며 문화재들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문화재 행정이 시행되길 바란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과는 또 다른 시대정신에 의해 아파트를 허물고 문화재 경관을 복원하는 그때를 대비한 백년대계의 정교한 문화재 정책이 등장하기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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