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워케이션으로 버려진 학교에 온기를

이재순 호서대 벤처대학원 벤처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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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이다. 산과 들이 언제나 우리의 좋은 놀이터가 됐지만 그래도 으뜸은 학교였다. 넓은 운동장에서 땅따먹기나 고무줄놀이, 말타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집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책들이 언제나 도서관에 꽂혀 있었다. 만국기가 휘날리던 어느 가을 날이면 학교 앞 개울에서 맛있는 냄새와 어우러진 동네 어른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흘러넘쳤다. 그렇게 학교는 언제나 우리 동네의 핫플이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학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3년 3월1일 기준 누적으로 전국에 3천922개가 폐교됐으며 그중 358개는 여전히 활용되지 못한 채 폐교로 남아 있다. 이렇게 특별한 활용계획 없이 장기간 방치된 폐교는 지역의 흉물로 전락해 지역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출산과 수도권 집중화로 비수도권에서 폐교 가능성이 더 커지면서 폐교의 활용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지역 소멸의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폐교를 워케이션 공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연한 근무 환경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워케이션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근무환경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져 무용지물로 여겨졌던 폐교는 이러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워케이션 장소로 재탄생할 준비가 이미 돼 있다. 폐교의 넓은 교실은 원격근무를 하기 위한 좋은 업무공간이 될 수 있다. 넓은 운동장과 강당은 팀빌딩 활동이나 소규모 콘퍼런스를 위한 장소가 될 수 있다. 또 학교 주변의 자연환경은 근로자들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업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다.

 

워케이션을 위한 공간으로 폐교를 재탄생시키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재활용을 넘어 근무환경의 혁신과 체류형 생활인구의 유입으로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근무자들에게 독특하고 새로운 근무 환경을 제공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개선하고, 이들이 지역사회와 교류하며 지역 문화를 경험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전 세계 40여개국이 90일 이상의 장기 체류비자를 발급해 디지털 노마드족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워케이션을 통해 폐교를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폐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오랜 기간 지역주민들과 함께해 온 지역의 역사문화유산이므로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과 함께하는 워케이션을 통한 폐교의 활용은 근무 환경의 다양화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버려진 공간의 활용, 그리고 지역사회 활성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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