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남극에 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남극 관광

최영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제11차 월동연구대 총무

image

남극에서는 고립된 생활을 하므로 우리나라 기지 주변에 기지를 운영하는 이탈리아와 중국 연구자들이 방문하는 것을 제외하면 문명 세계에서 온 외부인들을 만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기지 앞에 낯선 배가 나타나기만 해도 월동대원들은 깊은 관심을 가진다. 남극에서 생활한 5개월 동안 관광객들을 위해 운행하는 크루즈선을 네 번 정도 볼 수 있었다.

 

최근 한 유명 유튜버가 남극 크루즈선을 타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크루즈선을 타고 남극을 오려면 1인당 적어도 수천만원이 소요된다. 장보고기지 앞에 정박했던 호화 크루즈선도 1인당 승선 비용이 약 6천만원으로 온라인에 고시돼 있었다. 그럼에도 남극이 주는 특별함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남극을 방문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심이 증가하면서 남극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가 늘고 있다.

 

실제로 국제남극여행사협회(IAATO)에 따르면 남극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2018~2019년 5만6천168명, 2019~2020년 7만4천401명에서 코로나19로 감소하다가 2022~2023년 다시 7만1천258명으로 늘어났다. 2023~2024년도 아직 집계 전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등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남극 관광을 통한 방문객 증가는 오랫동안 고립되고 보호됐던 남극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남극에 상륙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외래종이나 바이러스 유입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남극 환경이 변화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조류독감이 점점 남하하고 남극 대륙에서도 발견되면서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상황이다.

 

남극 관광 활성화에 발맞춰 국제사회도 관심과 대응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모든 남극 현안은 매년 남극조약 가입국들이 모이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서 논의되는데 최근에 이 회의체에서도 관광과 관련된 의제 제출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남극 관광에 대한 논의만을 위한 별도 회의와 일정을 배정할 정도로 논의 깊이가 심화하고 있다.

 

유럽과 호주,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관광 규제를 위한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형성되고 있고 대부분의 국가가 남극 환경 보호를 위한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칠레나 아르헨티나 등 남극 관광이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국가들은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남극조약 주요 당사국으로서, 또 2027년 남극조약 당사국 회의(ATCM) 개최 예정국으로서 남극 관광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정하고 논의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이를 위한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남극 관광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고 둘째, 아직 남극 관광과 관련해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은 남극 조약 부속서들에 대한 검토 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남극 관광객 파악을 위한 허가 절차 안내와 제도 정비, 민관 협업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극지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에 소속된 필자로서는 남극 관광을 활성화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환경 변화로 남극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접근성이 관광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도 과학 연구와 관광 등 남극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