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인간관계 생명론-생명으로 보는 예술

이기태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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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직관적이고 주관적이며 그야말로 인간적인 예술의 분야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분야에서 주체와 객체 그리고 여건에 따라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가 하면 비관으로 빠지게도 한다. 섬세한 하나하나의 빛, 소리 등은 이를 감지하는 객체의 유전적 다양성 또한 매우 다를 것이다.

 

감각수용기의 민감도와 그 수용 정도의 범위가 다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수용의 임계치를 넘는 감각과 감성에 대해 다르지 않게 무감할 수는 있다. 성장에 영향을 주는 문화 배경과 처해지는 여건에 따른 경험과 훈련 정도에 따라 그 감흥의 속은 다를 것이다. 따라서 멋진 사진을 보거나 시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각자 마음속에는 그 정도가 다른 꿈이 함께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 다름을 구분하는 민감도 정도와 그 정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에 대한 유전적 탁월성과 훈련의 배경 정도는 물론 문화적 배경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봄을 맞아 주변은 다양한 색깔로 치장될 것을 기대한다.

 

강남스타일의 ‘싸이’ 이후 ‘BTS’를 포함해 케이팝 아이돌이 이 같은 짧은 시간에 경제와 정치·외교적 노력으로는 이루기는 매우 어려운 한류를 열고 있다. 한류를 즐기는 세계인은 각자 그들의 음악을 ‘노리끼리’, ‘병아리색’ 또는 ‘싱가폴 저녁노을’ 등의 감성으로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 감성의 다양함 속에 이르는 깊이는 각자로 하여금 김밥을 즐기거나 한국어까지도 배우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강도를 주거나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정도 등 다양할 것이다. 타고난 문화예술의 감성과 수용성 정도에 따라 그 음악을 혼자 즐기거나 꼭 친구를 끌어들여 함께해야 즐겨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결과는 케이팝 한류이고, 이를 세계 어디에나 있는 ‘병아리’ 색으로 정형해 메가트랜드화하면 국가 위상은 향상된다. 한때 지나가는 사회의 문화적 흐름이지만 그래도 이를 경험하는 세계인은 생애를 지내며 한국을 기억한다. 그 기억에 대한 소멸과 각인의 깊이 정도는 각자의 자발성과 감성의 수용성과 행위에 대한 각자의 유전적 형질에 따라 다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성에 대한 인문적 상상력이 만족해 행복감을 느끼는 일은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그 삶은 늘 한국의 편에 서는 세계인이 되게도 한다.

 

감성이 아닌 감성도 있다. 한류라는 트렌드에 자신을 띄워 그 흐름 자체를 즐기는 개체, 흐름의 부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 개체, 그 흐름의 부류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불가피하게 속하는 개체 등 문화예술 자체보다는 사회 시스템이 중요한 개체도 있다. 타고난 유전자에 의한 발현 정도에 따라 예술을 즐기는 진심은 다를 수밖에 없다. 공연표를 구매하는 일도 그 진정성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예술에 대한 감성과 수용성이 내 형질보다 사회적 영향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면 인위적 행복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내 형질과 개성에 솔직해진다면 공연한 부추김으로 다른 사람의 감성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행복에 진솔한 사회에는 ‘따르거라’ 또는 ‘따라가자’ 하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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