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사)아리말연구소장
북청사자놀음은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정월 대보름에 하던 놀이로 마을의 편안함을 빌기 위해 벌였던 놀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돼 국가무형유산이 됐다. 속초에 내려와 사는 피란민들을 중심으로 이어지면서 속초사자놀이가 되기도 했다.
북청사자놀이에서는 양반과 머슴인 꼭쇠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런데 꼭쇠의 이름 뜻을 모르다 보니 꼭쇠 모자는 대강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생각이 학계에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북청사자와 속초사자와는 다르니 남한의 모습도 틀린 것은 아니라 한다.
꼭쇠에는 어떤 말뜻이 숨어 있을까. ‘꼭’은 머리꼭대기의 높은 곳이다. ‘꼭두각시’는 머리 꼭대기에 실을 묶어 가지고 노는 인형이다. ‘꼭두쇠’는 남사당패의 꼭대기에서 끌고 가는 우두머리다. 꼭대기까지 모두를 바닥 아래로 숨기는 놀이가 ‘숨바꼭질’이다. 머리 꼭지까지 모두 꽁꽁 숨어라는 뜻이 ‘꼭꼭 숨어라’다. 꼭지의 가장 높은 곳을 ‘꼭대기’라 부른다.
‘쇠’는 새롭게 솟아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한 해의 첫날인 설을 지내고 새롭고 솟아나는 것을 ‘설을 쇠다’라 한다. 나물이 새로운 식물로 먹을 수 없게 되면 ‘쇠었다’고 한다. 머리가 하얗게 새로이 솟아나면 ‘쇠었다’고 한다.
이렇게 새로이 솟아오르는 ‘쇠’는 마당쇠, 변강쇠, 구두쇠, 껄떡쇠, 얼렁쇠, 알랑쇠, 외딴쇠, 생인쇠, 모르쇠, 살판쇠, 개똥쇠, 꼭두쇠, 짝쇠, 난장쇠 등 전혀 다르게 솟아오른 사람으로 널리 쓰였다.
꼭지에 새롭게 솟아오르는 이름이 ‘꼭쇠’다. ▲하인이지만 모자를 씀으로써 가장 키가 커진 꼭지(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다. ▲놀음의 꼭대기에서 앞서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꼭지의 사람이다. ▲하인이지만 양반의 머리 꼭지에 올라 앉은 듯 어리숙하면서도 양반을 골리는 사람이다.
▲우스꽝스럽게 솟아오른 모자를 쓰고 양반보다도 높게 구는 올라간 사람이다. ▲마분지나 신문지와 같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재료로 만든 모자를 썼다. ▲볼품없어도 높아지고 싶은 우리네 속 빈 강정의 모습이다.
꼭쇠는 꼭두각시처럼 보이는 가장 낮은 하인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놀이를 이끌어가는 꼭두쇠의 모습이다. 하인이 우두머리라는 어처구니없는 이름부터 눈물 나게 웃음을 준다. 이제 꼭쇠의 말뜻을 알았으니 국어사전들에서 ‘꺽쇠’로 부르는 잘못을 하지는 말자. 속초사자놀이라도 모자가 달라져는 안 된다. 사자춤에서 꼭쇠모자는 중요하지 않으니 대강 써도 되는 것도 아니다.
1936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행해지던 북청사자놀이의 꼭쇠는 양반보다 한 계단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양반보다 높게 올린 모자를 쓰고 있다. 요즘의 남한에서 볼 수 있는 꼭쇠 모자와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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