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요즘 연천은 옛날 연천이 아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전철 1호선이 연천까지 연결돼 이제는 ‘인천에서 연천까지’가 새로운 구호가 됐다. 인천이 태평양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제1의 항구도시라면 연천은 선사시대 구석기의 유적지와 동이리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고도(古都)다. 전철이 이어지면서 연천에는 에스컬레이터를 갖춘 아주 편리한 현대식 역사가 문을 열어 아마 북에 가장 가까운 전철역사가 마련됐다.
훗날 남북 통일의 새 역사가 이뤄지면 연천역은 휴전선의 분단을 넘어 북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연천을 가장 빛나게 만들고 더 따듯한 마을로 발전시킨 것은 연천의 인구 대비 1.1%나 되는 대한적십자사 봉사원들의 헌신과 봉사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연천은 관내 어느 지역에서든 재난이 발생하면 긴급구호를 위해 적십자사의 노란 단복을 입고 구호품을 들고 현장에 제일 먼저 나타난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바로 장옥화님이다. 장옥화님은 1996년 연천다정봉사회에 입회한 이래 오늘날까지 27년간 쉬지 않고 무려 1만573시간을 봉사해 올해에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명예의 전당에 1만시간 봉사자로 등재됐다. 장옥화님은 지금은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연천지구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아픈 허리를 마다하지 않고 봉사의 현장에 어김없이 제일 먼저 달려간다. 장 회장이 이렇게 봉사에 나서게 된 동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1996년 연천지역에 큰물이 범람하면서 수많은 이재민이 군청에 마련된 대피소로 피신했는데 그곳에서 적십자사 봉사원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 감동으로 장옥화님은 그저 대피소 안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집이 물에 잠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 살짜리 아기를 들쳐업고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구호 활동에 나서게 됐다. 그 자리에서 봉사회에 입회하고는 ‘아이 업고 봉사하러 다니는 엄마’라는 사람으로 기억될 만큼 억척스럽게 나서 구호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것이 장옥화님이 평생을 봉사원으로 살게 했고 그때 등에 업혀 자라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돼 가족들과 함께 모두 봉사의 길에 나서게 됐다. 장옥화 회장은 지하철과는 달리 사람의 아름다운 봉사로 사랑과 헌신의 대로를 연천 한가운데 만들었고 이 길이 연천을 살고 싶은 도시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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