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의 클로즈업] 계엄 논란의 허상과 책임 있는 정치

‘공포·불안’이 정치적 선동도구로 악용되면
민주주의 건강한 발전 저해, 국민불신 심화
민심에 귀 기울여 책임있는 정치 실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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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호원대 명예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계엄 논란이 다시 불거지며 국민의 불안이 증폭됐다. 야권은 정부의 계엄 준비설을 제기하며 강하게 공세를 펼쳤고 이로 인해 여야 간의 논란이 격화됐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 비춰 볼 때 실제로 계엄령이 발동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공포와 불안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쉽게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대중의 불안은 권력 강화를 위한 유력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의 ‘적색 공포’나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은 과도한 공포를 부추겨 대중을 통제하고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계엄 논란도 이러한 정치적·심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계엄이라는 단어는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 독재와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국민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과거의 억압적 통치와 투쟁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야권은 이러한 상징성과 기억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국민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그러나 이러한 계엄 논란은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정치적 선동은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계엄령 발동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 등 다양한 견제 장치가 마련돼 있어 계엄령은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만 발동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 음모설이 여전히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프롬이 지적했듯이 정치적 선동은 국민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근거 없는 계엄령 소문을 남용해 국민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은 극히 무모한 정치적 전략이다.

 

하지만 야권만 비판할 수는 없다. 정부 또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 계엄 논란이 확산되는 동안 정부는 명확한 해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켰다.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불안을 잠재울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되는 정치적 공방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치의 중심은 언제나 민심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번 논란은 단순한 정치적 충돌을 넘어 한국 정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현실 정치에서 여야 간의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그 해결 방식은 성숙한 자유 체제의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점은 여야가 국가 안보라는 중대한 문제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박한 안보 상황을 외면하고 이를 정치적 논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결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행위다. 안보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논쟁의 소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와 음모론의 확산이다. 양극화는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저해하며 국민 간의 불신과 혐오를 더욱 심화시킨다. 또 음모론은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민주주의의 기능을 저해하는 독으로 작용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진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근거 없는 두려움을 조장하는 선동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진정성이다. 안보가 정치적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닌, 국민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강건해질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책임 있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허상에 기대어 논란을 이어간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적 토대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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