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사)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요즘 프랑스는 필자에게 흥미로운 나라다. 문화 수준에 강약 기준을 두는 게 적절한지 몰라도 문화강국이라는 말에 토를 달기 어려운 여름을 보냈다. 프랑스를 올려다보게 됐다. 파리 올림픽을 통해 보여 준 프랑스문화에서는 격조가 느껴졌다. 도시가 가꿔 온 전통을 거대 스포츠 이벤트에 녹여 낸 솜씨는 발군이었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일군 공화국이고 그 정신을 배태하고 있는 문화는 강했다.
개막식 피날레, 셀린 디옹이 에펠탑 중간 특설 무대에 올랐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진다 해도 그대 날 사랑한다면 두려워할 것 없으리.’ 근육 수축 희귀병을 앓고 있는 가수가 온 힘을 다해 부르는 ‘사랑의 찬가’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노래를 우리는 기꺼이 함께 불러왔고 그 밤에 더욱 감동하며 따라 불렀다. 나는 평창 올림픽 무대에 섰던 정선아리랑 예능 보유자 김남기옹을 떠올렸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메밀밭 물결 위를 헤쳐가는 뗏목 위 아이들을 보며 세계인들은 같은 꿈을 꿨다. 사랑은 영원하고 인류는 희망하는 존재들임을 두 가수가 들려줬다.
지난해에는 샹송의 나라에서 우리 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판소리 창 본 ‘심청가’를 번역 출판한 에르베 페조디에가 큰 역할을 해 이뤄진 자리다. 에르베는 프랑스에서 ‘K-vox(한국 소리)’를 설립해 판소리를 알려온 배우이자 극작가다. 김경아 명창이 무대에서 심청가를 불렀고 에르베가 아니리 광대로 같이 공연했다. 프랑스어로 번역해 프랑스인들에게 들려 준 심청가에 관객들이 열광했다. 우리 관객들도 머뭇대는 추임새가 울려 퍼져 극장을 달궜고 한국의 소리가 세계인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공연자들은 들떴다. 에르베는 심청가 중 인당수 대목에 꽂혀 현지 방문을 원했고 지난 9월 초, 백령도 심청각에 공연 마당이 펼쳐졌다.
날이 화창해 가시거리 안에 인당수가 보인다 해도 좋을 야외 무대였다. 관객은 기획과 기록팀 10여명, 백령 주민들과 선생님들, 오가는 관광객들로 조촐했다. 김경아 명창이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불렀고 눈물 바람 끝에 에르베가 등장해 심봉사 눈뜨는 장면을 연기했다. 소경이 ‘번쩍번쩍’ 눈을 떠야 하는데 ‘뽕짝 뽕짝’으로 들리는 에르베의 발음과 몸짓에 좌중은 박장대소했다. KBS, OBS에서 동행 취재했고 이후에 공연과 인터뷰를 방영했다. 적지 않은 나이로 보이는 에르베는 평생소원을 이루게 됐다며 아이처럼 들떠 1박 2일을 보냈다.
나는 프랑스 사람 에르베를 통해 프랑스를 다시 경험했다. 그와 만났던 시기를 전후해 열린 올림픽도 달리 보였다. 내가 좁은 범주에 가둬뒀던 우리 소리가 세계인 모두의 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흔들며 몸짓과 소리로 심청가를 즐기는 그는 유연하지만 강해 보였다. 자유롭게 유머를 구사했고 이틀 내내 온몸으로 행복감을 뿜어냈다. 나는 에르베에게서 프랑스가 꿈꾸는 문화인을 보았다. 셀린 디온이 에펠탑에서 불렀고 에르베가 백령도 심청각에서 불렀던 노래가 ‘다 프랑스’였고 문화의 힘은 그렇게 강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