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사건건 대립하던 미국과 중국이 오랜만에 동일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정책금리를, 중국 런민은행은 지급준비율을 각각 대폭 인하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정책 전환은 양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침체를 막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18일 정책금리를 5.25~5.5%에서 4.75~5.0%로 내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용 둔화와 성장률 하락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2%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2022년 3월부터 10차례 연속 인상했다. 아직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4.0%에서 4.4%로 증가, 성장률이 2.1%에서 2.0%로 하락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연준은 2년 반 만에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한 것이다.
중국의 정책 전환은 미국보다 더 포괄적이었다. 판궁성 런민은행장, 리윈쩌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지난달 24일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통화정책 완화, 부동산 부양, 주가 상승 방안을 예고했다. 지급준비율은 대형은행 8.5%에서 8.0%, 중소형 6.5%에서 6.0%로 각각 인하됐다.
2주택 대출 계약금 비중을 25%에서 15%로 낮추고 기존 모기지 금리는 0.5% 인하했으며 지방 국유 기업들의 주택매입 대출 지원이 주택가격의 60%에서 100%로 확대됐다. 보험·증권회사 등에 주식 매입을 위한 5천억위안 규모의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자사주 매입을 위해 3천억위안 규모의 재대출 자금이 제공됐다.
지난달 26일 개최된 공산당 중앙정치국회의는 이러한 조치의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비판을 불식시켰다. 이 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경제성장률 목표 5%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중국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시에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5억위안(약 944억원) 규모의 외식, 숙박, 영화, 스포츠 소비쿠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자본시장은 이러한 부양책을 즉각 환영했다. 실제 지난 9월23~27일 홍콩 항셍지수는 13%, 상하이종합지수도 12.8% 각각 급등했다.
우리나라의 1, 2대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경기부양책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미국 정책금리 1%포인트 인하가 우리 수출을 0.6%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의 경기 회복도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무선통신기기의 수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다만 현재 당면한 우리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뿐만 아니라 내수 진작이 필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은 8월 수출 증가세는 분명하지만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회복은 지연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6%에서 2.5%로 낮췄다. 현 정부 들어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긴축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56조원, 올해 30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지만 주가지수가 상승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유지돼 장기 불황에 빠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이 요구된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이 조성한 우호적인 대외여건을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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