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 기념비 보며… “어두웠던 역사 되풀이 없게, 냉혹한 현실 직시해야”
■ 러시아정교회, 시바토수도원 방문
자동차가 세관에서 나올 때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곳곳을 소요하고 있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포크롭스키 주교좌교회를 방문했다.
우리는 동방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조지아정교회 등 정교회(正敎會)에 낯설다. 정교(正敎)는 한자 의미대로 ‘옳은 교회’라는 의미다.
로마가톨릭 교회가 8세기 게르만족 포교에 필요한 성화 제작을 허용할지, 우상숭배로 볼지 등 교리 다툼으로 갈라진 교회다.
성화 제작을 우상숭배로 반대했던 비잔틴 교회는 스스로 ‘옳은 교회’, 정교(正敎)회라 칭했다. 교회 벽면의 이콘 성화가 화려하다. 정교회도 결국은 포교를 위해 성화를 허용했다. 예배 시간 내내 사제와 신자는 계속 서 있어야 한다. 교회 홀에 의자는 없다. 성가도 악기 없이 육성으로만 부른다. 러시아정교회는 결혼한 사람도 신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결혼한 신부는 주교 등 고위직 사제는 될 수 없다.
러시아 혁명 후 스탈린은 ‘1도시 1교회’ 원칙을 정하고 러시아정교회, 이슬람교 등 종교를 탄압했다. 원칙적으로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만 인정되고 나머지 교회나 사원은 폐지했다. 포크롭스키 교회는 1도시 1교회에 해당돼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고 후계자 흐루쇼프는 스탈린 격하운동과 함께 종교의 자유도 허용함에 따라 스탈린 사후 많은 신설 교회가 생겼다고 한다.
“인류 역사는 세속의 정치 권력과 영적인 종교 권력의 투쟁, 내가 믿는 신이 최고신(最高神), 참된 신이라는 종교와 종교의 투쟁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 생각난다.
택시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러시키섬에 위치한 시바토 수도원에 갔다.
태평안 연안 러시키섬에 위치한 시바토 수도원은 신부 2명, 수도사 20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신부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사진 촬영을 요청하니 기꺼이 응한다. 향후 이런 오지의 수도원에 찾아올 한국인은 없을 것이라고 우리끼리 말하며 서로 웃는다.
■ 아르바트 거리,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19세기 말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한 조선인이 처음 정착한 장소가 ‘개척리’라고 한다. 현재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 젊음의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로 변했다.
초창기 정착지로서 움막 등 주거환경이 매우 불결하고 전염병이 창궐해 1911년 러시아 정부가 외곽에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어 ‘신한촌(新韓村)’으로 이주시켰다. 옛 개척리인 아르바트 거리는 서구식 건물, 예술 조형물, 젊은이 대상의 문화거리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은 항구 옆에 있다. 제정러시아가 1904년 완공한 시베리아 철도의 종착역이다. 모스크바까지 9천300㎞, 기차 정거장만 850개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이 역에서 1907년 고종의 헤이그밀사인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 등 세 분이 출발한 역이다. 힘없는 망국 조선의 젊은 관리 세 명이 비장한 각오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출발한 역을 바라본다.
■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 기념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 기념비가 있는 곳을 들렀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수립됐다. 상하이, 연해주, 한성에 있던 세 개의 독립단체를 통합해 설립한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이다.
이동휘 선생은 조선 말기 한성무관학교를 나온 무관이다. 조선 멸망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사회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다. 1920년 소련의 레닌이 200만루블을 상하이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줬다. 이 선생의 측근이 40만루블을 공산당 확장에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발견돼 감찰 담당이던 김구 선생이 척살했다. 이승만 대통령, 안창호 선생 등과 노선 차이로 일찍 임정과 결별하고 1921년 1월 연해주로 돌아가 고려공산당 창당 등 평생 공산주의 운동을 한 인물이다. 조선 말,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이다.
이 선생은 1920~30년대 스탈린의 공포 정치와 잔혹한 숙청 정치를 목격했는데 공산주의 실상은 잘 모르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국훈장도 공산주의 경력 때문에 매우 늦은 1995년 수상했다. 역사의 현장을 역사학과 대학생처럼 많이 걸어다녔다.
어두웠던 100여년 전 우리의 역사 현장을 보면서 다시는 이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자동차 5일 만에 세관 통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지 5일째인 7월8일 오후 자동차가 세관에서 통과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무사고 완주를 다짐한다.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K 교수는 “걱정을 떨치고 즐겁게 갑시다”로 건배사를 한다. 모두 “가자, 이스탄불”을 힘차게 소리쳤다.
영어로 여행은 ‘travel’인데 어원은 ‘고생, 고난’이라는 ‘travail’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도 여행은 고생이라는 뜻에서 문화적 동질감을 느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장기간 여행하면서 마찰 없이 보내기 것은 쉽지 않다. 서로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고난을 함께 겪으면서 우정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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