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배리어프리’ 박물관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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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7일 시작된 경기도박물관 기증특별전 ‘만길 벽 천이랑 바다’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공모사업이다. 장애인 입장에서 박물관을 100배 즐길 수 있지만 이런 성격의 전시가 전국적으로도 희귀하다. 류승연 작가가 박물관의 장애인 접근성 강화를 주제로 한 개막식 날 강연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에게도 적용됐다. 228년 역사의 경기도박물관은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접근성이 어렵다. 현재 조성된 잔디광장과 함께 내년에는 주진입로 확보와 관객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시설의 한계를 단계별로 해소하고 있다.

 

시설보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측면의 장애물이다. 유물 앞에 서면 지루하고 심지어 겁나기 일쑤다. 주먹돌도끼를 보고 미개인이 떠오른다. 선사시대 토기나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보고 가슴 뛸 일이 잘 없다. 초상화나 복식 역시 거기서 거기고 한문으로 된 이광사 ‘서결’이나 정조대왕의 필적은 누가 물어볼까 두렵다. 백남준 작품의 비디오아트 경우도 고장 난 TV같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토로는 오래됐다.

 

이런 사례는 전시 자체가 비장애인마저 박물관에서 잠재적인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와중에 “우리 애가 작품 앞에서 고개를 흔들며 펄쩍펄쩍 뛰고 즐거워하고 있어요” 하는 발달장애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류 작가의 체험 고백이 머리를 때린다. 이것은 장애인의 돌발행동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이해 요구 이전에 박물관 전시의 근원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물관은 관객이 있을 뿐이지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은 애초부터 필요 없는 곳이 아닌가.

 

그간 박물관 전시는 당연히 공급자인 학예사의 연구 입장에서 경영됐다. 그 결과 즐겁게 유물을 소비해야 할 장애인은 물론이고 비장애인에게도 난해했다. 이를 토대로 관객 모두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하는 전시가 박물관의 당면과제다. 장애인을 위한 ‘AAC’, 즉 보완(Augmentative), 대체(Alternative), 소통(Communication)은 당장 실천 대안 중 하나다. 특히 의사소통그림판은 비장애인의 소통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유물에 대한 직관적이고도 무의식적인 반응인 발달장애인의 상동행동은 이성적인 비장애인들의 난해함과 지루함 앞에서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박물관이야말로 복지의 요람 중의 요람인 시대다. 이미 세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장애 없이 무장애(Barrier-free)로 다 같이 사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모든 관객의 복지라는 눈높이에서 박물관인 모두가 전시를 재발명해내야 할 때다.

 

문화와 복지는 본래 일란성 쌍둥이다. 올해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122조4천억원으로 총 700조원의 17.5%다. 문화 예산은 1%인 7조원 정도다. 복지의 핵심 영역은 정신건강이나 자살 예방, 인구절벽이나 고령화사회, 그리고 신체나 정신 장애인에 대한 문제 해결이다. 이것은 결국 마음 치유와 직결되는 문화예술과 손잡을 때 궁극적으로 해결된다. 병원이나 시설이 사후 대책용이라면 박물관은 사전 예방 공장이다. 복지라는 가래로도 못 막는 장애인 문제를 예술이라는 호미로 미리 막아내는 것이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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