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학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패디 웨건’이라고 알려진 범죄자 수송차 이름의 유래는 1830년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용어는 대체로, 악의 없이, 아일랜드인과의 연관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북미 도시 지역에는 아일랜드계 경찰관이 많았는데 마침 ‘패디’라는 용어가 아일랜드어로 패드레이그(영어로는 패트릭)의 줄임말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는 설과 당시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이 대부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어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미 동부 해안의 보스턴 항만 지역에는 많은 수의 아일랜드계 경찰과 더불어 음주 사건이나 폭행 사건에 연루된 많은 수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있었는데 그들이 연행될 때 아일랜드계 경찰이 운전하고 아일랜드계 범죄자들이 수송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그렇게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패트롤을 줄여 붙인 말이 패티 왜건이었는데, 당시 아일랜드계인들의 영향으로 패티를 패디로 바꿔 불렀다는 설도 있다.
재미있는 건 패디 웨건이 생뚱맞게 ‘블랙 마리아’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이다. 1830년대 경찰차가 운용되기 시작했을 때 보스턴 경찰관들이 한 흑인 여성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리기 위해 ‘마리아 리’라는 당사자의 이름을 따 ‘블랙 마리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 리는 그 지역에서 선원들을 위한 하숙집을 운영하던 흑인 여성으로 큰 키와 장정 못지않은 힘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그중 하숙집에서 소란을 피우던 세 명의 난폭한 선원을 마리아 혼자서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는 일화가 가장 유명한데 이는 실제 신문기사 자료로도 남아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밖에 정의로운 이런 이미지와 달리 뉴욕주 버펄로강, 이리 운하 지역에 위치한 더그스 다이브의 난폭한 손님이었던 건장한 체격의 골칫거리 흑인 여성을 강제 연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설도 있고 북미지역의 주요 경마 경주에서 우승한 말의 이름이 블랙 마리아인데 때마침 경찰 수송 차량이 역마차의 기능을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말의 이름을 따왔다는 설도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몬태나주 캐스케이드에는 우편물 강도들에 맞서 맹활약하던 인물이 있었다. 그 사람은 역마차를 이용해 가장 험난한 지형과 악천후 속에서도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는 초고강도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수배를 피해 떠도는 각종 범법자들로부터 우편물을 지켜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늑대, 곰, 퓨마 같은 치명적인 야생동물로부터도 자신과 우편물을 지켜내야 했다. 성공적인 임무 수행은 결국 미국 우편 공사로부터 스타 루트(역마차를 이용한 우편물배달 서비스)의 임대계약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메리 필즈였으며 마찬가지로 덩치가 매우 크고 힘이 센 흑인 여성이었다. 유사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역마차 메리’ 또는 ‘블랙 메리’라고 불렀다.
1892년. 뉴저지주 웨스트오렌지에 있는 토머스 에디슨의 연구소 소속 연구원인 윌리엄 케네디 로리 딕슨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건축 공간을 설계한다. 그가 설계한 이 공간은 실제 움직임을 시간으로 제약하고 현대 시각이미지 생산의 새로운 개념과 경험 창출에 기여했다. 이곳은 향후 세계 최초의 영화 스튜디오로 더 잘 알려진다. 혁신적인 이 공간의 이름도 ‘블랙 마리아’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흑인 여성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검은색과 폐쇄적인 공간 그리고 육체적, 시간적, 시각적 통제만이 남은 범죄 수송차의 기술적 구조와 형태가 외관상 매우 닮아서다.
그 이름이 영화와 만난 지 130여년이 지난 지금, 손바닥만큼 작아진 스마트폰 화면에 들어간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블랙 마리아에 탑승한 범죄자의 느낌을 육체적, 시간적, 시각적으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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