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혜초 스님이 다녀온 길, 우리 역사 관련 시베리아 대평원 몽골고원 유라시아의 속살 직접 체험해 감동 느끼고파
■ 시베리아 출정식
오후 늦게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5일 만에 자동차를 러시아 세관에서 운전해 가져왔다. 우리는 자동차 3대 앞에서 시베리아 출정식을 하면서 “가자! 이스탄불”을 힘차게 외친다. “자동차여행은 목적지 도착이 목표가 아니고 지나가는 과정을 멋있게 즐기는 것이다.”
시베리아 구간은 바이칼호까지 약 3천700㎞를 달려야 한다. 하바롭스크, 벨로고르스크, 스코보로디노, 울란우데 등 발음도 어렵고 지명도 생소한 시베리아 대초원을 통과해야 한다. 시베리아 대평원은 관광객은 거의 안 다니고 화물차 등 산업용 도로다. 숙소, 도로, 휴게소 상태가 어떨지 걱정스럽다. 블라디보스토크 위도는 43도(서울 37도)인데 스코보로디노(북위 54도)까지 서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 바이칼호로 향하는 길이다. 오늘은 짧은 거리인 우수리스크 지역까지 이동한 후 숙박한다.
맛집을 검색, 조지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조지아 대표 음식으로 딤섬 일종인 ‘킨칼리’와 풍선빵을 시켰다. 만두에 손잡이가 있어 내용물을 흘리지 않고 먹는 요령을 직원이 설명한다. 작은 공 크기의 둥근 ‘게살 풍선빵’을 주문했는데 직원이 바람을 빼고 칼로 잘라주는데 맛이 독특하다. 조지아는 향후 카스피해 북쪽을 지나 캅카스산맥을 넘어 우리가 지나갈 국가다. 조지아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는다고 말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음식 가격은 서울의 약 60%다. 7월 초순 이곳 대학 졸업 시즌인데 졸업생 가족들의 축하 세리머니가 이채롭다.
축하 음악을 크게 틀고 식당 종업원 5, 6명이 졸업생 좌석으로 달려가 세리머니를 시작한다. 남자 졸업생에게 털 장식 모자를 씌워주고 여자 졸업생에게는 하얀 면사포를 씌워준 다음 직원들이 모여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처음 보는 풍경이라 약혼식인지 물어봤더니 대학 졸업 축하 이벤트란다.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는 여학생에 물어보니 정보기술(IT) 분야 전공이다.
우수리스크로 가는 길은 우리의 시골 농촌 풍경과 닮았다. 토양은 흑갈색으로 매우 비옥하다. 시베리아 대평원의 시작은 하바롭스크부터다. 이곳은 1천500년 전 고구려의 변방 땅이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의 영토이며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농사짓던 땅이다. 서기 668년 고구려 멸망 후 약 20만명의 고구려인이 당나라로 포로로 끌려갔다고 한다. 포로의 후손 중에 당나라 현종 때 안서도호부 절도사를 지낸 명장 고선지 장군도 있다.
■ 왜 유라시아 대륙횡단 여행인가
유라시아 대륙을 자동차로 횡단하는 여행을 알게 된 것은 4월 초순 모 일간지 주말 섹션판의 실크로드 여행 기사다. 나와 아내는 실크로드 종주를 위해 6년 전 중국 시안을 출발해 둔황, 투루판, 우루무치, 톈산의 천지호를 다녀온 경험이 있다. 코로나19로 여정을 멈췄다가 금년 여름 신라의 구법승 혜초 스님이 통과한 파미르고원 실크로드 구간을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신문에 난 실크로드 기사를 보고 자동차 여행에 합류한 것이다.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는 시베리아 대평원, 기마유목민의 본거지 몽골고원과 고비사막, 1천300년 전 신라 구법승 혜초 스님이 다녀온 길,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기 힘든 땅’이라는 타클라마칸사막, 해발 3천~4천m의 톈산산맥과 파미르고원, 카스피해, 캅카스산맥을 체험해 보고 싶다. 유라시아 대륙의 속살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은 욕구는 50년 전 고등학생 시절 ‘김찬삼 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의 감동 때문이다.
아내를 동반자로 설득해 함께 가는 일이 어려웠다. 먼저 아들들이 여행 도중 사고를 염려해 적극 반대한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 한 달여 걸렸다. 아내는 최근 ‘콜드(cold) 알레르기’가 있어 추운 지역에 가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 출발 역, 리즈돌노예역
우수리스크를 가는 중간에 시베리아 철도역 ‘리즈돌노예’역이 있다. 현재는 폐역으로 넓은 주차장에 수목만 무성하다. 스탈린은 1937년 8월 하순 블라디보스토크 군경에 연해주 거주 고려인 약 17만명을 3개월 이내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도록 지시했다.
정거장 건물 뒤쪽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아마 이 주차장에서 매일 수천 명이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끌려와 6천~7천㎞ 떨어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황무지로 이송됐을 것이다. 망국의 고려인은 통곡했으리라. 히틀러가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것과 비슷하다.
강제 이주 이유는 고려인들이 일본 군대의 첩자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가을 수확철인데 많은 고려인들은 갑작스러운 이주 통보로 가을걷이도 못 했다. 반대하는 사람 수천 명을 우선 처형했다. 주택이나 전답 등 재산을 처분하지도 못하고 강제로 끌려갔다. 겨울철 집도 없이 황무지에 버려진 고려인들은 움막을 짓고 무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이주 초기 어린아이의 희생이 컸다고 한다. 강제 이주한 1937, 1938년에 출생한 아이들이 호적에 별로 없다고 전한다.
강제 이주 대상에는 1920년 5월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 홍범도 장군도 포함돼 있었다. 후에 카자흐스탄에서 경비원을 하셨다. 망국의 민족 수난사의 현장에서 간단한 묵념을 했다. 성악과 출신인 K교수가 위로곡을 한 곡 멋지게 불렀다.
숙연한 마음으로 텅 빈 철도역 주변을 둘러보고 오늘의 목적지 우수리스크로 출발한다. 우수리스크까지 가는 도로는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이라 매우 양호하다.
첫날 묵는 우수리스크의 여관 이름이 뜬금없이 ‘마르코폴로’다. 좋은 징조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정에 마르코 폴로가 700여년 전 지나간 파미르고원을 통과할 예정이다.
베네치아의 모험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게 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마르코 폴로가 피렌체 감옥에 포로로 갇혔을 때 동료 죄수인 문인이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방견문록은 16세기 유럽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은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중국 식당에 갔는데 맥주 등 술은 안 판다고 한다. 그 대신 편의점에서 술을 사다 먹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 러시아 국민은 세계 최고의 술 소비량으로 악명이 높다. 정부는 국민의 과도한 음주를 줄이기 위해서 오후 9시 이후 소매점에서 술 판매를 금지하고 식당의 주류 판매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위도가 높아 해가 늦게 떨어진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11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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