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슬프게도 살아가는 것이 기쁘다

김기배 대한민국특례시장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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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통은 남의 말을 듣는 데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알량한 지식이나 상식으로 예단했던 때가 있다. ‘듣기’를 하지 않던 그때, 두 번의 ‘버럭’의 순간이 떠오른다.

 

축구단을 창단하고 운영국장을 할 때의 일이다. 내 생각에 선수 유니폼을 너무 많이 만든다고 생각해 ‘버럭’ 하고 재검토하라고 했다. “제가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축구선수가 유니폼 장사 하는 것도 아니고 1인당 16벌이 왜 필요합니까.”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겁니다.” “다시 검토하고 그 이유를 문서로 제출해 주세요.”

 

다음 날 설명서가 왔다. ‘연습 시 최소 두 벌(한 벌은 땀 때문에 도중 환복), 두 벌 세탁 중,두 2벌 건조 중, 두 벌 찢어짐 등에 대비한 준비용 등 여덟 벌×2(홈, 어웨이)=16벌(긴팔 미포함)’.

 

또 한 번의 ‘버럭’은 교향악단 연주복 관련이다. 해외 연주를 위해 어렵게 예산을 확보해 한 군데 양복집에서 맞춰 준다고 했더니 개인별로 예산을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아니, 제가 아무리 몰라도 저는 평생 30만원짜리 이하 양복을 아웃렛에서 사서 입었는데 1인당 70만원짜리 연주복을 맞춰 준다고 하는데 안 된다니 너무 한 거 아닙니까. 그 이유를 제가 이해할 수 있게 내일 단원들과 상의해 설명해 주세요.”

 

다음날 교향악단 총무가 조용히 설명하는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는 왜 나만 옳고 선(善)이라고 확신할까. 그 확신이 모두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좌절을 안겨줄 거란 것을 생각하지 않을까. 말의 주검, 말의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는 세상을 걷다 보면 때론 어지럽고 비틀거린다. 모두 마음의 빗장을 꽁꽁 걸어 잠그고 타인의 이야기에는 열심히 고개를 흔들고 있다.

 

어딘가 있을 것이다. 꽁꽁 언 마음의 문 활짝 열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만 하는 말, 말, 말들.... 조였던 혁띠 풀고 가식의 옷 활활 집어 던지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글, 글, 글들.... 살아가는 것이 기쁘다.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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