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열 한국교통안전공단 경기남부본부 공학박사
자동차 레이싱 게임에서 뒤따라오는 다른 자동차를 미끄러지게 하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바나나인데 피하기도 까다로운 데다 밟았다 하면 자동차는 빙글빙글 회전한다. 그런데 실제 도로에서도 이같이 운전자들을 당황시키는 존재가 있다. 흔히 블랙아이스라 불리는 도로 살얼음이다.
도로 살얼음이란 낮 동안 눈 또는 비가 내리면 노면의 틈새로 스며들었다가 밤 사이에 기온이 내려가면 먼지나 매연과 결합해 도로 위에 얇게 얼어붙은 얼음막으로 이 얼음이 워낙 얇고 투명해 도로의 검은 아스팔트 색이 그대로 비쳐 보이기 때문에 검은색 얼음이라는 블랙아이스로 불리게 된 것이다.
도로 살얼음은 기온이 떨어지는 새벽이나 야간 시간대에 산간도로, 다리 위, 터널의 진출입구 등 그늘지고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도로 살얼음은 실제 도로처럼 보이기 때문에 눈으로는 식별이 어려운 게 특징이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도로 위의 암살자라 불리기도 한다. 도로 살얼음 구간에서의 교통사고 치사율은 마른 노면이나 눈길보다도 3배 이상 높다. 이는 육안으로 예측이 어렵고 제동거리가 급격히 길어져 대형 사고나 연쇄 추돌 사고의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의 실험 결과를 보면 살얼음 구간에서 시속 30㎞로 주행 중 브레이크와 핸들을 조작한 경우 장애물 회피가 가능하고 제동거리도 눈에 띄게 길어지지 않은 반면 시속 40㎞ 이상으로 주행한 경우에는 차량의 제동거리가 현저히 길어지고 통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 즉 위험을 회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에 있어서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특히 자동차의 ABS가 고장난 경우라면 더욱 위험해진다. ABS를 임의로 끈 상태에서 시속 50㎞로 주행하다가 제동을 할 경우 살얼음 구간에서는 핸들을 돌려도 조작이 불가능하고 또 바퀴 한쪽만 살얼음 구간을 밟고 주행 중 급제동을 하면 바퀴가 잠기면서 차가 180도 이상 회전하게 되는데 이때 회전하다 옆으로 멈춰 설 경우에는 뒤쪽에서 주행 중인 차와 측면 충돌하게 돼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겨울철 운행에서는 도로 살얼음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겨울철에는 도로 결빙 등에 의한 사고 예방을 위해 사계절용 타이어보다 제동거리가 14% 정도 더 짧고 차량 제어가 수월한 겨울용 타이어 장착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겨울용 타이어도 미끄러지기 때문에 실험 결과와 같이 주행속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며 운행 중 살얼음을 만나면 가급적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사용을 자제하고 차량이 미끄러지면 후미가 미끄러지는 쪽으로 핸들을 조향하되 신속하고 틀어진 만큼 조향해야 하며 곡선 구간을 주행하면 곡선 구간 진입 전에 차량 속도를 충분히 감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간도로 등 도로 살얼음이 예상되는 구간에서는 차량 제어가 가능할 만큼 미리 충분히 감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급제동, 급가속, 급회전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며 앞 차와의 차간 거리는 평소보다 3배 이상 확보해야 한다.
차량 점검 또한 필수인데 ABS 경고 등이 들어왔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하고 운행 전에는 기상정보와 도로 정보를 꼼꼼히 파악해야 한다. 위험 상황을 예측하고 운전하느냐 아니냐가 위기의 순간 생사를 가를 수 있다. 아는 만큼 예방할 수 있는 도로 살얼음 사고, 올겨울에는 방심하지 말고 도로 살얼음 대처법을 정확히 인지해 안전하게 운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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