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식 시인·문학평론가
12·3 비상계엄 사태는 시민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상처였다. 서울 도로에 나타난 군 장갑차와 국회의사당으로 들이닥친 무장한 군인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과거 계엄 때 받았던 공포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수많은 시민이 한밤중인데도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들어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냈다. 시민들이 계엄군과 맞서는 사이 우원식 국회의장 등 다수의 국회의원이 국회의 담을 넘었다. 결국 국회의사당에 모인 190명의 국회의원이 155분 만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지금 이곳의 작가에게 심리적 외상을 입혔다. 이제 작가들은 작품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시를 쓰는 데 바탕이 되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일제강점기 카프 계열의 대표적인 시인 임화는 ‘현해탄’에서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도 모른다/어떤 사람은 아픈 패배에 울었다”며 주권 잃은 트라우마를 노래했다. 의열단 요원이었던 이육사는 ‘광야’에서 “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날을 예고했다. 그런가 하면 서정주처럼 ‘오장 마쓰이 송가’를 써서 가미카제 특공대로 죽어간 동족의 젊은이를 미화한 시인도 있다. 서정주는 민족의 트라우마를 잘못 사용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서사라는 특징 때문에 중요한 소설의 소재가 된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계관과 우리나라의 분단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좌익 진영의 염상진과 우익 진영의 염상구는 형제다. 두 인물은 남북이 형제라는 것을 상징한다. 또 김원일은 ‘손풍금’에서 분단의 비극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서사로 엮어냈다. 손풍금은 남파 간첩으로 잠입했다가 체포돼 21년을 복역한 박광수와 남한에 정착한 박도수의 이야기다. 태백산맥처럼 손풍금도 분단 시대의 형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은 우리에게 닥친 큰 충격이다. 이러한 충격이 역사적 트라우마로 작가의 작품 소재가 됐다.
심리적 외상인 트라우마는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와 미술 등에 종사하는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소재가 된다. 천만 관객 달성으로 알려진 ‘서울의 봄’은 12·12군사반란에 의한 트라우마를 형상화했고 액션의 명작인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서사화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화면에 생생한 액션을 불러오고 잘못된 역사에 저항했던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든다.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가 역사적 트라우마로 ‘절규’라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그는 미술사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뭉크는 노란색과 붉은색 등 원색으로 공포에 질려 있는 인물을 그렸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뭉크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원색으로 질문을 던진 통찰력이 뛰어난 화가다.
작가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세계에 질문하고, 현상에 질문하고, 사물에 질문한다.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질문한 결과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소설 ‘소년이 온다’와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질문했고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4·3항쟁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질문했다. 이제 지금 이곳의 작가들이 12·3 비상계엄이라는 트라우마로 작품을 만들 것이다. 시인은 시로, 소설가는 소설로, 감독은 영화로, 화가는 그림으로 12·3 비상계엄에 질문을 던질 것이다. 작가는 질문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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