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응원봉의 숨겨진 불빛

지승학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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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연금술사이자 약사인 헤링 브란트는 1669년경에 ‘인(燐)’을 발견한다. 인은 최초로 발견된 자체발광 물질이다. ‘포스포러스’라 불리는 인의 영문 명칭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단어 맨 앞에 자리한 ‘포스(phos)’라는 말이 그리스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포토그래프의 ‘포토’도 포스에서 온 말이다.

 

연금술은 물질 안에 본질적인 에너지가 숨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숨겨진 에너지는 불완전한 물질을 완전한 상태로 바꿀 때 나온다. 연금술적 관점에서 볼 때 불완전한 소변을 완전한 인으로 바꿀 때 빛이 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이때 불은 그 빛을 해방하는 도구가 된다. 불은 불순물을 제거해 순수한 본질만 남기기 때문이다.

 

비금속인 인과 달리 금속인 철은 상대적으로 녹이 스는 불완전한 물질이다. 연금술에서 혼돈과 어둠의 상태를 뜻하는 니그레도(부패, 흑화) 단계는 그러한 불완전함의 시작을 나타낸다. 불을 만나기 전의 철은 불완전한 혼돈과 어둠의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한다. 녹이 슨 철의 붉은색은 그래서 인간의 세속적이며 불완전한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전쟁의 신이면서 농업의 신이기도 한 마르스(mars)의 이름이 철을 상징하게 된 이유는 철은 불을 만나면 유용한 농기구가 될 수 있고 치명적인 전쟁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인들에게 붉게 빛나는 별로 관찰됐던 행성의 이름을 마르스를 따 ‘마스’라고 한 것은 불완전한 철이 지닌 세속적인 의미와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자식 표기인 화성에 ‘불 화(火)’자가 있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결국 인은 발광체의 줄기 물질이 됐다. 이를테면 1966년 닉 홀로냑 주니어는 발광다이오드(LED)를 발명해 특허권을 취득했고 1973년 에드윈 챈드로스는 야광봉을 발명해 특허권을 얻었다. 거기에는 모두 인으로 개발한 새로운 물질이 관여한다.

 

애초에 군사 및 재난, 조난의 응급 구조를 목적으로 발명된 취지와 달리 야광봉은 1980년대 나타나기 시작한 ‘레이브 신(Rave Scene)’이라는 파티 열풍에 휩쓸려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레이브 신이란 어떤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하우스 음악에 맞춰 소리도 지르고 노래 부르며 춤도 추는 대규모 이벤트 혹은 그 파티 현장을 말한다. 영국에서 레이브 신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지만 혹자에 따르면 이는 결코 무의미한 쾌락적 현실 도피가 아니라 레이브 경험이 주는 연결성, 의식의 변화된 상태, 유토피아적 사회 모델의 구체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치 민주주의에서의 집회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듯한 이 주장은 레이브 현상이란 현대 사회의 새로운 부흥운동임을 증언한다.

 

2024년 12월, 한국에서 야광봉은 LED를 장착한 응원봉이 돼 민주주의의 빛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 빛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에서 파생된 또 다른 말, ‘마셜’(martial)이라는 용어에 ‘로우(law)’라는 말이 붙을 때 변질된, 다시 말해 농업의 신은 죽고 전쟁의 신만이 살아남아 그 위세를 떨치려는 권력의 니그레도 단계를 마주하면서 더 밝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빛은 불이 돼 부패한 녹슨 철(mars)을 끓이고 태워 버렸다. 응원봉의 빛이 흑화한 그 불순물(martial law)을 불태우자 완전한 민주주의의 불빛은 그렇게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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