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 한국군사법학회장·호원대 명예교수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40일이 지났다. 이 과정에서 장성급 군인 7명이 계엄에 동조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그들의 계급은 별 20개에 달한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헌법적 조치지만 이번 사태는 군의 역할과 명령 복종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충돌하면서 심각한 논란을 일으켰다.
군에서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위기 상황에서 군의 신속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불법적인 명령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 군사법원법과 군형법은 “명백히 위법한 명령”에는 따를 의무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명백히’라는 기준이 모호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상관의 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하고자 하더라도 실제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이론적 논쟁을 넘어 보스니아 내전과 5·18 광주화운동에서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 사례가 ‘상관의 불법 명령’이 책임을 면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확립된 “명백히 위법한 명령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은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군의 지휘 체계와 명령의 정당성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다. 비상 상황에서 위법성을 즉각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를 인정해야 하지만 군 병력 출동 같은 중대한 명령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순히 위기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1980년대 초 일부 군인이 정치적 압력에 따라 군사력을 행사하며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사례는 군 명령 체계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현재 명령의 적법성을 판단할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인들에게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실질적이고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비상 상황에서도 군 지휘관이 명령의 적법성을 신속하게 검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엔의 사례처럼 군내에 법률자문팀을 상시 배치해 명령의 법적 타당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라이 학살(1968년) 사례에서처럼 이러한 자문팀은 명령의 법적·윤리적 적합성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상 상황에서도 헌법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군의 전통적 가치인 명령 복종이 민주주의와 충돌하지 않도록 헌법적 원칙과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위법한 명령을 식별할 수 있는 윤리적 판단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군형법의 모호성을 해소하고 ‘명백히 위법한 명령’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명확히 명문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도 군 조직이 법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고히 지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군의 법적 판단과 군사작전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핵심 수단이다.
물론 명령 복종과 관련된 위법성 문제는 향후 법적 판단을 통해 명확히 규명될 사안이다. 그러나 이번 계엄 논란은 군의 안보적 역할과 정치적 중립성이 얼마나 잘 유지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군이 명령 수행 과정에서 작전의 적시성과 법적 균형을 효과적으로 조화시킨다면 국가적 혼란을 극복하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신뢰받는 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논란과 오용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번 논란이 군 조직과 명령 체계가 헌법 및 윤리적 원칙에 부합하도록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기 바란다. “군은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방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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