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 풍경] 외래어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下

‘원음주의’에 따른 외래어 표기법
中 인명은 양해규정 적용해 적고
日 인명·지명, 우리 표기대로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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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곤 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前 KBS 아나운서

우리 외래어 표기법은 원음주의(原音主義)를 뼈대로 한다. 한자(漢字)를 공유하는 대표적인 두 나라 일본과 중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곧 중국어·일본어 표기를 글로벌 언어 체계와 함께 다룬 것. 동양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한국어의 문자 및 음운체계에 예외적 허용을 거절했다.

 

물론 한중일은 역사·정치·문화가 다른 여느 나라에 비해 유사하고 밀접하다. 그러나 모름지기 어문규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신, 간결성·체계성·통일성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1988년 개정된 이래 현재까지 시행 중인 외래어 표기법(문교부 고시 제85-11호)은 오롯하다.

 

일부 기관·단체명·상호 등의 표기가 생경하고 조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문규범 자체를 함부로 손대는 건 근시안적이다. 중국·일본 인명·지명의 한국음화(韓國音化)는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중국어를 잣대로 문제를 짚어보자.

 

첫째, 난삽한 한자의 범람 문제다. 우선 인명. 중국인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발음하려면 그 한자를 독음(讀音)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에게 한자 읽기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모택동(毛澤東)·등소평(鄧小平)·주은래(周恩來)의 친연성에 함몰돼 요즘 화제인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의 주역 량원펑과 뤄푸리를 양문봉(梁文鋒), 나복리(羅福莉)로 해야 할까. 중국 인명에 등장하는 한자는 그 범위와 종류가 상상 이상이다. 난삽한 한자들이 우리 눈을 어지럽힐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중국 인명을 소리 나는 대로 중국음에 따라 적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명의 경우도 광둥성의 광저우(廣州)를 ‘광주’라 표기하면 경기도 광주(廣州)의 정체성은 난감해진다. 후난성(湖南省)·허난성(河南省)도 호남성·하남성이 돼 그 유사성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이 땅의 수많은 주(州)·산(山)·천(川)으로 끝나는 지명은 뜻 모를 열패감에 사로잡힐 개연성이 농후하다.

 

둘째, 글로벌화에 어긋난다. 동양권의 인연을 볼모로 세계화를 멀리하는 것은 어리석다. 세계인이 시진핑·라이칭더(대만 총통)라고 하는데 우리만 습근평(習近平)·뇌청덕(賴清德)을 고집할 것인가. 중국 인명·지명의 한국음화는 하나를 얻고 열을 잃는 결과다. 한자를 따로 익혀 그들의 이름과 땅을 우리 식으로 읽으면 끝나나. 그것이 통용되는 글로벌 표준, 곧 이들의 본이름을 따로 기억해야 하는 큰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참고로 중국 인명은 신해혁명(1911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인물은 한국음, 이후 인물은 중국음으로 하는 양해 규정을 뒀다. ‘공자·맹자’를 ‘쿵쯔·멍쯔’로 하기엔 뜨악하지 않은가 말이다. 신해혁명이 기준점인 이유는 봉건 왕조의 몰락, 중화민국의 탄생을 역사 변환의 큰 물줄기로 본 것. 손문(孫文)이 아닌 ‘쑨원’, 원세개(袁世凱)가 아니라 ‘위안스카이’인 이유다. 지명은, 모호하긴 하지만 아주 익숙한 지명일 때 중국음을 인정한다. 북경·상해·대만·대북 등이다.

 

셋째, 일본어와의 형평성 문제다. 한자를 공유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차별하는 것은 우습다. 현 총리 이시바 시게루를 석파무(石破茂)라고 하면 생경하다. 촌상춘수(村上春樹)는 누구인가. 유명인이지만 이제 이 사람을 이런 식의 한국음으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 한국음을 발화(發話)했다고 해서 자주성이 고양되는 게 아니다. 일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본 인명을 무심히 독음하는 게 우리 외래어 표기에 걸맞다. 이 점을 망각해선 안 된다. ‘촌상춘수’라 하지 않고 그저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豊臣秀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의 유혹은 그래서 무효(無效)하다. 지명의 한국음 표기 주장은 더 옹색하다. 찰황(札幌)·충승(沖繩)·횡빈(橫濱)은 과연 어디를 말하는가. 삿포로·오키나와·요코하마면 충분할 터. 우리는 일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본 인명과 지명을 우리 표기대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지명은 역시 예외를 둔다. 동경·대마도·북해도 등이 속한다.

 

외래어를 둘러싼 여러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부 개선의 여지도 있으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무엇이 시대정신에 걸맞고 미래지향적인가에 대한 숙고와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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