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오폭보다 더 실망스러운 오폭 대응

군 당국, 포천 오폭 사고 ‘늑장 대응’
市, 재난문자 미발송… 불안감 조성
신뢰 훼손·재발 방지 심기일전 필요

image
왕선택 전 YTN 통일외교전문기자·북한학 박사

지난 6일 발생한 경기 포천 공군 전투기 오폭 사고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가 원인이었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럽고 두 차례에 걸친 교정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도 안타깝다.

 

또 사고 전투기 2대가 미리 정해진 경로와 다르게 비행했는데도 지상 관제팀이나 훈련 통제팀에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그런데 이번 사고와 관련해 가장 불만스러운 대목은 오폭 이후 군 당국의 대응이다. 군사훈련은 실전과 같이 진행돼야 하지만 훈련 중에 치명적인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면 군은 즉시 군사활동 모드를 멈추고 대민 행정 서비스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사실 관계를 알리고 추가적인 손실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 이후 군의 움직임을 보면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사고는 오전 10시4분 발생했지만 합참에 최초 보고가 이뤄진 것은 10시24분이었다. 소방 당국은 이미 10시5분에 주민 신고를 받고 즉각 대응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은 대응이다. 합참의장이 보고를 받은 시각은 10시40분,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에 대한 보고는 10시43분이었다. 전시였다면 합참의장은 중대한 전투 차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30분 이상 전쟁을 지도한 것이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사고와 관련해 공군의 문자 공지를 받은 것은 11시41분으로 사고 발생 이후 거의 100분이 지난 뒤였다. 합참의장 보고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61분 늦게 공지 문자가 온 것이다.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자들에 대한 공지가 지연된 것이다.

 

공군은 오폭 상황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1보, 2보, 3보를 순차적으로 내면서 새롭게 추가되는 내용을 보강하는 것이 표준 절차라는 점을 몰랐다는 것인가. 포천시 일대에 재난문자가 발송되지 않았다는 점도 유감스럽다.

 

사고 관련 초동 대응이나 인근 주민 대피가 진행됐다고 하지만 다른 행정기관과의 협조나 잠재적인 추가 폭발 가능성, 유언비어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재난문자는 발송됐어야 한다. 당시 사고 주변 거주 주민들은 남북 전쟁 가능성을 상상하면서 불안감에 떨었다고 한다.

 

오폭 자체보다 오폭 대응이 더 심각한 문제로 주목하는 배경 중에 하나는 과거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태에서 경험한 군과 국민 간 신뢰 붕괴 경험이다. 당시 군은 사건 발생 이후 최초 보도자료에서 사건 시점을 9시45분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다양한 제보를 종합하면 9시25분 이전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합참은 만 이틀이 지난 뒤에야 폭침 시각이 9시22분이라고 수정했다. 수정은 했지만 군에 대한 신뢰는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후였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최종 발표가 나왔지만 발표를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전시라면 군사작전과 관련해 보안이나 정보 통제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 ‘통제’와 ‘조작’은 다른 문제다. 정보 조작은 언제, 어디서나 금지 사항이다. 하물며 평시 훈련 중 발생한 사고에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신속하게 알리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불신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군 당국은 민간과 장병들의 안전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신속하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최상의, 그리고 유일한 옵션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군 지휘관들은 자신의 통제구역에서는 ‘정보 통제뿐만 아니라 조작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조작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 군 조직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상식에 맞지 않은 늑장 대응은 정보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심을 초래한다. 오폭은 물론이고 군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오폭 대응이 재발하지 않도록 군 수뇌부의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