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중간 목적지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다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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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한 ‘사강 달리’의 7월14일 아침 기온은 13도로 상쾌하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7월 중순의 날씨는 우리의 5월처럼 기분 좋은 날씨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시베리아의 다음 목적지 바이칼호를 향해 출발한다.

 

바이칼호에 도착하면 시베리아 대평원을 3천900㎞ 달려온 셈이다. 도로 상태도 매우 열악한 편도 1차선 노면이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왔다. 수시로 느리게 가는 화물차를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는 위험한 곡예운전을 했다.

 

고장난 O사장, L실장 차를 수리해야 한다.

 

먼저 바이칼호 근처 3천900㎞ 떨어진 ‘울란우데’ 정비소를 예약했다.

 

울란우데는 러시아 부랴트공화국의 수도(인구 43만명)로 이곳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일요일인데 출발 전 전화해 보니 울란우데 1급 정비소가 일요일에도 정상 영업을 한다고 한다.

 

우리도 과거 소득이 적을 때 주중 주말 구분 없이 일했던 경험이 생각난다.

 

울란우데 정비소에 구멍 난 터보 수리에 대해 전화로 예약했다. 터보가 고장 난 O사장 차는 제 속도를 못 내고 간신히 시속 80㎞ 저속으로 운행 중이다.

 

이 지역은 몽골족 일파인 부랴트족이 목축업을 하던 북부지역 몽골초원이다. 현재 몽골족이 30~40%이며 나머지는 러시아인이다. 부랴트 몽골족은 러시아에 완전 동화돼 몽골어를 잊어 버렸다.

 

1727년 청나라와 러시아가 바이칼호 주변 시베리아 지역의 몽골족 거주지를 러시아에 넘겨주는 국경조약(카흐타 조약) 체결 이후 300년 동안 러시아 지배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현재 몽골족의 독립 시도, 인종 갈등, 몽골 통합 등 소수민족 문제가 없는 지역이다.

 

■ 원시적 초원에서 피정(避靜)의 드라이브

 

울란우데로 가는 초원의 풍경. 작가 제공
울란우데로 가는 초원의 풍경. 작가 제공

 

시베리아 산림을 벗어나고 있다. 아름다운 목초밭, 초지가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연두색 초원, 몇 조각 하얀 구름, 새파란 하늘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차창 밖 사진을 찍다가 사진으로 전체 풍경과 분위기를 담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포기한다. 그 대신 벅찬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로 한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초원에는 ‘모기, 등에, 파리, 벌, 독성이 있는 곤충’ 등 우글거려 들어가면 큰 사고를 당한다.

며칠 전 사진 찍으러 갔다가 물린 곳이 아직도 가려워 고생하고 있다.

 

서부영화 같은 ‘브라트공화국’ 농촌 목축업 마을 풍경. 작가 제공
서부영화 같은 ‘브라트공화국’ 농촌 목축업 마을 풍경. 작가 제공

 

목축업을 하는 농가가 초원에 자주 나타난다. 목재로 지은 주택이 많은데 규모가 작고 무척 낡아 보인다. 겨울철 추위와 난방비 절약을 위해 작은 집에 사는 것이다.

 

모든 목재 집의 지붕 중앙에 굴뚝이 한 개씩 설치돼 있다. ‘게르’ 중앙에 설치된 굴뚝처럼 바닥에는 음식 조리와 난방을 겸하는 화덕이 있을 것이다.

 

집집마다 마당에 나무 울타리로 겨울철 가축을 가둬 두는 우리가 설치돼 있다.

 

우리 크기를 보면 가축 수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봄여름 방목이 끝나면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건초를 먹이면서 가축을 키우는 장소다. 초라한 목조가옥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퇴색한 시골 풍경과 무척 닮았다.

 

러시아는 평원과 초원을 이동하며 생활하는 유목민을 정착시키기 위해 제정러시아부터 소련까지 오랫동안 공권력을 투입했다. 유목민들은 정착 생활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저항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의 정착 유도 의도는 정착민들은 통제하기 쉽고, 세금 징수에 편하고, 반란이 발생했을 때 진압이 쉽기 때문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넓은 초원에 흩어져 살던 카자흐 유목민은 정부의 강제적인 정착 유도에 크게 저항했다. ‘카자흐’ 뜻은 ‘자유인, 방랑자’라는 뜻이다. 카자흐인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반강제로 정착 생활로 추진하는 데 많은 유혈 사태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카자흐스탄 사람 중 여름에는 초원에 가서 유르트(게르)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 ‘요수소’ 사태와 울란우데 자동차정비소

 

길가에서 자동차에 ‘요수소’를 붓고 있는 모습. 작가 제공
길가에서 자동차에 ‘요수소’를 붓고 있는 모습. 작가 제공

 

여행도 리듬을 타야 하는데 자동차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 여행의 흐름이 끊어진다. 우리가 탄 차의 요수소가 비어 간다고 빨간 경고신호가 계기판에 들어왔는데 오전 내내 요수소 가게를 못 찾고 있다.

 

급기야 중간에 요수소를 못 구한 채 요수소가 바닥 나고 차가 도로에 멈춰 섰다. 선두 차 가이드 H씨와 윤군이 함께 요소수 가게를 찾아 앞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이곳은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지역이다. 요수소를 사러 간 동료와 연락이 안 되니 답답하다.

 

두 시간 동안 시베리아 평원의 길가에 앉아 요수소를 못 구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80㎞를 달려 요수소 가게를 찾았다. 두 시간을 길에서 허비한 후 자동차에 요수소를 보충하고 출발한다.

 

울란우데로 운전해 가는 도로 위에서 러시아 표준시간이 한 시간 늦춰져 시계를 풀어 다시 시침을 조정한다. 우리는 서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늘도 낮 시간을 한 시간이나 번 셈이다. 러시아는 광대한 나라로 표준시가 9개다. 우리는 이동 중에 표준시간을 세 번째 맞추고 있다. 오후 3시께 울란우데 정비소에 도착했다.

 

1급 정비소라 기대가 크다. 마침 직원이 몽골계다. 외모가 비슷한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다. 차를 맡겨 놓고 가라고 한다. 밤 사이 수리할 테니 내일 오전 9시에 찾으러 오라고 말한다. 우리는 O사장 차를 정비소에 맡겨 두고 나머지 두 대 차에 나눠 타고 바이칼호 숙소로 향한다.

 

■ 바이칼호 휴식

 

바이칼호 석양을 보면서 아내와 함께 휴식. 작가 제공
바이칼호 석양을 보면서 아내와 함께 휴식. 작가 제공

 

시베리아 코스의 중간 종착지, 바이칼호에 석양 무렵 도착했다.

 

울란우데 정비소에 자동차를 맡기고 바이칼호 숙소로 가는 도중에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식사 먹거리인 삼겹살, 러시아 술 보드카, 양파, 당근 등 식재료를 샀다.

 

길에서 노지 재배 딸기를 팔고 있다. 작고 볼품은 없지만 먹을 만하다. 저녁식사 후 디저트용으로 K회장이 노지 딸기 한 박스를 샀다.

 

숙소는 바이칼호 백사장 옆에 있는 3층짜리 민박 건물이다.

 

석양 무렵 바이칼호에 도착하자 모두 백사장으로 뛰어가면서 만세를 부른다.

 

모두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아내는 잽싸게 양말을 벗고 호숫물에 발을 담그며 행복하게 환호한다.

 

바이칼호는 경상남북도 크기의 호수로 세계에서 제일 큰 민물 호수다. 아내와 4년 전 추운 2월에 눈 덮인 자작나무 숲과 얼어 붙은 바이칼호를 보러 왔던 추억이 생각난다.

 

당시 영하 30도의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반대로 오늘은 날씨가 일 년 중 가장 좋은 7월 한여름에 바이칼호에 다시 온 것이다. 감회가 새롭다.

 

바이칼호 민박집 주방에서 러시아 여행객과 건배. 작가 제공
바이칼호 민박집 주방에서 러시아 여행객과 건배. 작가 제공

 

민박집 주인이 지하층 부엌을 저녁식사 요리에 사용하도록 빌려줬다.

 

유일한 여성인 아내, 나, L실장, 윤군 등 일행이 공동으로 삼겹살고추장구이를 준비했다. 주방용 칼이 매우 무뎌 고기 자르는 데 불편이 있었다. 반찬은 통조림 김치 한 가지다. 보드카와 삼겹살구이가 잘 어울린다. 필자가 러시아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윤군의 추천을 받아 보드카는 맛있는 것으로 세 병을 샀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시베리아 대평원의 피로가 싹 가신다. 보드카 술잔을 들고 “가자! 이스탄불”, “고생 끝, 행복 시작” 여행의 완주와 안전을 염원하는 건배사를 합창한다.

 

옆자리에 식사하던 러시아 부부의 부인이 오늘 60회 생일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합석해 술도 함께 먹고 ‘해피 버스데이’ 생일 축하곡도 부르면서 즐거움을 나눈다.

 

밤중에 북반구 시베리아의 총총한 별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보드카 술기운에 그냥 잠에 빠졌다. 바이칼호의 공기는 가볍고 매우 맛있다. 원시의 생명력이 넘치는 바이칼 호반의 숙소에서 행복한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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