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바이칼호, 샤머니즘 전설∙춘원 소설 ‘유정’ 배경

먼 옛날 한민족 두만강 건너 서쪽 문명 가져와 역사 만들어
알혼섬 외곽 절벽 신앙 연구 집합소 4년 전 추운 겨울 이곳 와봐...
산소 많은 태곳적 청정구역 바이칼호 산책 맑은 공기 한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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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 한민족 정신세계의 시원(始原)

 

먼 옛날 한민족은 서쪽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초원, 몽골고원을 통과하고 만주 평야를 지나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로 이동했을 것이다. 수천, 수만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민족 이동은 늦게 온 민족은 서쪽의 발달된 선진문명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일찍 정착한 후진 주민과의 투쟁, 지배, 화합 과정을 거쳐 한민족을 형성하고 한민족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민족의 형성 과정에서 많은 전설과 설화는 구전으로 전해졌다.

 

한민족의 시원(始原)은 어디인가, 한민족의 공통된 정신세계는 무엇인가. 궁금한 질문이다.

 

불교, 유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한민족의 원시적 사상은 유목민에게서 전수된 ‘텡그리신’과 샤머니즘 무속신앙이다.

 

과거 천신, 하느님은 같은 의미다. 하늘에 있는 ‘하느님’은 우주의 질서를 지배하는 절대적 ‘초월신’, 윤리와 도덕을 상징하는 ‘인격신’ 등 복합적 의미로 우리의 정신세계 기저를 이루고 있다. 샤머니즘은 모든 생명체, 무생명체, 죽은 조상 등 모든 곳에 영혼이 있다는 믿음이다. 고대사회에서 ‘하늘, 하느님’을 비롯해 영혼과 소통하는 역할은 샤먼(무당)이 담당한다. 유목사회의 칸, 중국의 황제는 하느님의 아들, 천자(天子)로 호칭하면서 백성들에게 정치적 통치권 위임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하느님에 대한 제사는 천자만의 특권이고 하느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린다”는 사상은 공자의 유학을 통해 동양의 통치 이념으로 발전했다. ‘하늘이 노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하늘의 명령, 하늘이 복을 내린다, 지성이면 하늘이 감동한다’ 등은 고대 원시 신앙인 텡그리신, 천신 사상과 관련이 있다.

 

우리 애국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의 하느님도 여러 의미의 혼합이다.

 

샤먼(무당)은 하늘, 하느님, 죽은 혼령 등 많은 영적 존재와 소통한다. 샤먼은 영적 존재와의 소통 능력을 지닌 중간자로서 민중의 점성술, 복을 빌고, 질병의 치유, 미래의 예측 등 고대사회뿐 아니라 현재도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다. 시베리아와 바이칼호는 한민족 샤먼의 전설과 설화의 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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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섬에 있는 샤먼(무당)이 신성시하는 지역, 4년 전 겨울 사진. 작가 제공

 

■ 한국인에 친숙한 바이칼호

 

시베리아 중심부에 있는 바이칼호는 한국 사람들에게 두 가지 이유로 익숙한 곳이다.

 

첫 번째 이유는 먼 옛날 한민족이 바이칼호 주변 시베리아 평원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민족이동 학설’이다. 당시 함께 이동한 무속인 샤먼(무당)의 영적인 성지가 알혼섬 외곽의 절벽 돌산 밑에 있는 작은 동굴이라고 한다.

 

세계 무속인 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리고 우리나라 무속신앙 연구자 등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을 찾는다.

 

필자도 4년 전 추운 겨울철 이곳을 가봤다. 무속인 성지는 바이칼호 내부의 섬인 알혼섬에 위치한 작은 돌산인데 부랴트 몽골인들이 매우 신성한 지역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시베리아, 몽골고원을 비롯한 유목민의 옛날 전통 신앙은 ‘텡그리신’, 이곳은 무당들이 영적인 기를 받는 기가 매우 센 지역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배경이 바이칼호다. 소설 유정은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돼 당시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4년 전 추운 겨울 바이칼호에 가게 된 배경도 50여년 전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춘원의 소설 유정의 배경을 보기 위함이다. 유정의 내용은 삼각관계 러브스토리다.

 

1933년 당시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매우 생소한 시베리아 바이칼호로 주인공 최석이 도피하고 바이칼호에서 사망하는 소설이다.

 

50대 이상 연령층은 소설 또는 영화로 ‘유정’을 기억하고 있다.

 

춘원 선생이 왜 바이칼호를 소설의 엔딩 배경으로 삼았는지 내용을 소개한다.

 

춘원 선생은 1892년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최고의 인기 소설가다. 191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신한일보’ 주필로 내정돼 시베리아 철도편으로 미국으로 가는 중간에 바이칼호를 간 것으로 추정된다. LA로 가기 위해 서울에서 출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탑승해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배편으로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 미 대륙을 기차로 횡단해 LA로 가는 여정의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코스이지만 1914년은 이렇게 미국으로 갔던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으로 가는 도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춘원은 시베리아의 ‘치타’(자동차 고장 정비를 위해 들렀던 도시)에서 몇 달간 머물렀다고 한다.

 

치타에 머물고 있을 때 아마 바이칼호를 관광했을 것이고 바이칼호에 대한 강한 인상으로 19년 후 연재소설의 배경을 바이칼호로 설정한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춘원 선생은 치타에 머물다 여비 부족으로 귀국했다.

 

나이 든 사람은 기억하는 고인이 된 여배우 남정임씨는 1966년 개봉된 영화 유정이 데뷔작이다. 남씨는 영화 유정으로 은막의 스타가 됐고 예명을 ‘남정임’으로 정한 것도 소설 유정의 여주인공 남정임 이름을 따온 것이다.

 

4년 전 겨울철인 2월, 얼음으로 덮인 바이칼호와 알혼섬 주변을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얼음 두께가 1m 이상 얼면 차량 통행을 허용한다고 했다.

 

당시 아침 기온 영하 30~40도, 해가 뜨는 낮 기온은 영하 20도의 추위인데 겨울옷을 많이 껴입고 여행했던 기억이 새롭다.

 

알혼섬 민박집에서 며칠 숙박하면서 북반구 겨울 하늘의 총총한 별을 봤던 감동이 진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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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바이칼호 민박집 몽골계 주인과 함께. 작가 제공

 

■ 행운의 여신이여! 남은 구간도 도와주소서

 

오전 6시 일어나 보니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바이칼호 백사장을 여유롭게 산책한다.

 

바이칼호의 공기는 달고 가볍다. 산소가 많은 태곳적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다.

 

호숫가에는 백사장도 펼쳐져 있고 맑은 물속에 검은 몽돌이 많이 있다. 백사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러시아인도 있는데 여름철 수영하러 놀러 온 것 같다.

 

몽골계 민박집 여주인이 아침식사에 본인이 키우는 젖소에서 금방 짜왔다는 따듯한 생우유를 가져와 맛있게 먹었다. 러시아인 남편과 함께 민박집을 운영하는데 팔려고 내놨다고 한다.

 

오늘은 절기상 7월15일 서울 기준 초복(初伏)이다. 서울은 무더위로 고생하는데 이곳은 가을 날씨처럼 선선해 저녁은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 낮 기온은 피서하기에 매우 쾌적하다.

 

처음 만나 서먹서먹하던 일행의 성격도 알게 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불규칙적인 식사, 지방질 많은 음식, 소화불량, 설사로 여러 명이 고생하고 있다.

 

내일부터 몽골고원과 고비사막을 통해 중국의 내몽골 국경으로 가야 한다. 앞으로 순탄한 여행의 흐름을 타면서 남은 구간을 안전하게 완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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