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의 클로즈업]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한국 정치를 본다면

韓, 감정의 장 변모... 정치적 불안정서
공동체 문제 해결하는 숙의·협력 필요
권력 쟁취 아닌 국민들 위한 정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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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대 명예교수·법학

정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된 근본적인 물음이다. 2천400년 전 고대 아테네에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이 질문에 답하려 했다. 그는 당시 민주정의 몰락을 목격하면서 대중의 열광과 선동에 휘둘린 정치가 어떻게 파국을 맞이할지 경고했다. “여론은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회의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내면에 숨어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꿰뚫은 통찰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가 공공선을 위한 철학적 성찰과 도덕적 책임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도자는 단순히 다수의 인기를 얻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더 나은 지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현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절제’와 ‘진실’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국 정치의 현실은 어떤가.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치적 변화와 혼란은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정치는 점점 ‘숙고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장’으로 변해 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와 불안을 자극하는 언어로 표심을 끌어들이고 유권자들은 정책보다는 이미지와 말투로 지도자를 평가한다. 정치 담론은 깊이가 아니라 자극을 좇고 실용보다는 선동이 앞선다. 이런 감정 정치가 반복될수록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는 합리적 해결 능력을 잃게 된다.

 

최근 여야 공방은 정치가 대결과 진영의 프레임에 갇혀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쪽은 정권 심판을 외치고 다른 한쪽은 야당의 발목잡기를 비난한다. 비전과 실현 가능한 정책은 사라지고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정치적 구호와 혐오의 언어로 넘쳐 난다. 국민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간다. 이대로라면 정치의 본령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정치는 본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숙의와 협력의 과정이어야 한다. 싸움도, 쇼도, 권력 쟁탈전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정략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이다.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이성적 토론이 필요하다. 정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정치, 증오가 아니라 공감의 정치가 절실하다. 정치는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돼야지 상대를 꺾기 위한 전쟁이 돼서는 안 된다.

 

소크라테스는 훗날 플라톤에게 ‘철인왕’을 이상적인 통치자로 묘사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를 문자 그대로 따를 수 없다. 그럼에도 그의 가르침—지도자는 지혜와 도덕성을 겸비해야 하며 권력은 국민을 위한 책임이어야 한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말 잘하는 인기인이 아니라 국가의 본질적 문제를 꿰뚫는 통찰과 실천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책임 있는 언행, 삶에서 드러나는 품격, 그리고 비전 제시의 능력이 결합된 리더십이 절실하다. 특히 급변하는 국제 질서와 기술 혁신의 시기에 고정관념에 갇힌 정치가 아니라 유연성과 통찰을 겸비한 정치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조기 대선은 단지 정치적 변화를 위한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본질을 다시 묻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를 성찰하는 계기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절차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유권자의 선택 하나하나가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소크라테스가 오늘의 한국 정치를 바라본다면 아마 광장에서 이렇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지금 당신들이 뽑으려는 지도자는 진정으로 국가를 위한 준비가 돼 있는가.” 그 물음에 우리는 떳떳이 답할 수 있을까. 정치의 본질은 권력 쟁취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책임과 헌신임을 지금 이 순간 다시 새겨야 한다.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할 때 정치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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