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의 말글풍경] 일단은 되게 개인적으로

강성곤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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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 있을 때 면접관 노릇을 자주 했다. 방송사는 PD, 기자, 아나운서의 경우 논술, 작문, 상식 등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최종 면접 전에 실무적성시험을 치른다. 보통은 3차 시험을 대신하게 되는데 자기소개서와 관련된 질문과 함께 각 직무영역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하는 잣대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게 평소 언어생활 습관이다. 응시생의 교양, 지식과 함께 발음, 말투, 어조 등을 눈여겨본다. 단어만 놓고 봤을 때 요즘 젊은이들은 유감스럽게도 과거보다 퇴보한 듯 보인다. 구사하는 낱말도 상대적으로 적고, 적절하고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아쉽다. 세 가지만 추려본다.

 

①되게

영어 very에 해당하는 우리 부사는 매우 다양하다. 매우, 무척, 퍽, 사뭇, 썩, 꽤, 제법, 대단히, 정말, 참, 상당히, 몹시, 자못 등. 이를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가려 쓰면 세련된 우리말 화자로 인정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독 ‘되게’가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배적으로 쓰인다. 언중의 자연스러운 선택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그저 대충 편한 것만을 좇는 세태를 따른 것이라면 문제다. 발음도 대개는 [데게], [대게]로 잘못 낸다. ‘되게’의 범람은 단연코 우리의 거친 말글살이의 반영이다. 가장 조악하고 비루한 very가 바로 ‘되게’다.

 

“직접 가보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이제는 피아노를 제법 잘 치는 구나”,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무척 슬펐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퍽 당황했겠군”, “그 옷은 썩 잘 어울리는구나”, “날씨가 몹시 추웠습니다”, “이번에 예정된 사업은 자못 기대됩니다”.

 

어떤가. 밑줄 친 부분에 ‘되게’를 넣은 것보다 낫지 않은가. 훨씬 교양 있고 스마트해 보일 것이다.

 

②개인적으로

바야흐로 ‘개인적으로’ 광풍이다. 특히 방송 출연자들이 더하다. 극단적인 오⸱남용이다. 영어 ‘I personally~’를 배후로 보고 있다. 서양인들은 자기 의견과 타인의 생각을 철저히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무언가를 인용할 요량이면 손가락으로 인용부호를 치며 말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이 대목이 발원지이고 시나브로 퍼진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의 유행은 심리적으로 보면 자기 확신의 부족, 책임 회피, 반대 의견 피력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대화와 소통은 어차피 개인들끼리 벌이는 의견⸱생각⸱주장의 마당이다. 스스로 조직이나 단체를 대변할 경우는 극소수일 테다. “저는 ~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내용이 길어 별도의 텍스트가 필요할 때)”가 무난하다. 발음도 문제다. 적(的)의 발음은 유의해야 한다. 우선 ‘적’ 포함한 음절 수가 둘일 때, 가령 지적(知的)⸱미적(美的)⸱동적(動的) 같은 경우는 무조건 [쩍]으로 소리 난다. ‘적’이 들어간 3음절 이상 단어일 때는 그 앞 글자의 받침이 ‘ㄴ/ㅁ/ㅇ’이면 [적], 그대로 발음한다. [개인적] [미온적] [양심적] [성공적]이다. ‘ㅂ/ㄱ’일 때는 [쩍]이 된다. [합뻡쩍] [공격쩍]으로 소리 난다. ‘ㄹ’은 원칙적으로 [쩍]이나 점점 [적]으로 가는 추세다. [자발쩍] [저돌쩍] [정열쩍]은 된소리가 자연스럽고 [법률적] [포괄적] [현실적]은 예사소리, 즉 평음(平音)이 부드럽다. 평음의 경음화(硬音化)라는 큰 파도 속에 그 역(逆)의 분투는 반가운 일이다.

 

③일단(은)

말을 시작하고 나서 다음 말이 잘 생각 안 날 때 습관적으로 쓰는 것을 마주한다. ‘일단(은)’은 사전적으로 ‘우선 먼저’ ‘우선 잠깐’의 의미다. 그러니까 ‘나중’, ‘다음’이 뒤에 붙어야 자연스럽다. “일단 검토하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은 경과를 보고 다음 일정을 잡겠습니다” 등이 바른 경우다. “(최근 본 영화 중 인상적인 게 있나요?) 일단은 없고요. 음~”, “이 책은 비타민의 허와 실을 잘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일단 드네요”는 그래서 적절치 않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습니까.” “네, 저는 일단은 개인적으로 소설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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