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물과생명 이사장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산불이 발생한다. 언론에서는 ‘산이 건조해서’라고 원인을 설명하고 산림청은 ‘낙엽을 치워야 한다’는 정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응으로는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 산이 왜 건조한지를 정확히 알아야 예방도 가능하다.
산이 마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땅속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년간 경기도 광주의 야산에 센서를 설치하고 강우 전후의 토양 함수율을 측정해 왔다. 100㎜의 많은 양의 비가 내려도 경사면의 함수율은 14%에서 16%로 잠깐 올랐다가 하루 뒤 다시 14%로 돌아간다. 땅속까지 수분이 충분히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말라 있는 땅은 오히려 물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한 비가 쏟아지면 땅속으로 스며들기보다는 표면에서 흘러내린다. 오히려 마른 땅일수록 홍수나 산사태가 쉽게 발생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산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건물을 짓고, 도로와 주차장을 설치하고, 경관을 좋게 한다며 가지를 쳐내고 잔디를 심으면 빛과 바람이 숲 바닥까지 도달해 땅은 더 빠르게 말라간다.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는 산이 더 건조해지는 역설이다. 여기에 더해 산림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임도를 조성하고 자른 나무를 옮기기 위해 중장비가 다니며 다져 놓은 길은 물을 빠르게 배출해 산을 더욱 건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제는 반대로 가야 한다. 물을 모으고 머무르게 해야 한다. 산에 빗물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스며들 수 있게 ‘물모이’ 같은 작은 웅덩이를 만들자. 숲의 바닥에 낙엽이나 이끼를 그대로 둬 햇빛을 차단하고 증발을 줄이자. 이용하지 않는 논은 물을 가득 채워 두도록 유도하자. 나무를 베어 내거나 주변 경관을 조성할 때는 훼손된 땅 표면의 수분 상태를 원상복구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생태적 복원력 회복의 시작이며 산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이 아니라 수치 기반의 과학적 관리다. 지금 이 땅의 함수율이 얼마인지, 얼마나 유지돼야 안전한지를 알아야 한다. 강수량과 대기 중의 습도만을 중계방송하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땅속의 수분까지 측정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산은 저절로 마르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다. 이제는 그 반대로 산을 촉촉하게 만들 방법을 선택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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