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공익을 위한 집단적 약속·공동체 의지 정치인들 보여주기식 아닌 책임 있는 자세로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아픔에 공감해야
정치는 단순히 권력을 쥐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아픔에 응답하고 공공의 이익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집단적 약속이자 공동체의 의지이다. 결국 정치는 ‘사람을 향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것은 삶을 돌보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바로 그 본질이다.
그래서 ‘정치는 무엇인가’ 하는 고대 아테네에서 던져진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 불렀다. 정치를 공동체 구성원의 선(善)과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치를 정말로 사람을 향한 일로 보고 있을까. 정치권의 언어는 때때로 거칠고 비난과 대결을 부추긴다. 그 언어는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고 사람들의 마음을 차갑게 한다. 정치는 진심을 잃으면 국민은 등을 돌린다. 냉소와 무관심은 사회를 잠식하고 그곳에 희망은 사라진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는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피어 나는 가능성”이라고 했다. 그런 정치라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나.
정치인의 말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한마디는 국민에게 하나의 ‘신호’로 읽힌다. 때로는 위로가 되고 어떤 때는 상처를 준다. 침묵조차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 정당 대표의 말 한마디는 국민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의 언어에는 온기와 책임이 함께 담겨야 한다.
1933년 대공황의 절망 속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라며 국민을 위로했다. 그 진심 어린 한 문장이 미국 사회를 다시 일으켰다.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 신부는 혹한의 겨울, 거리에서 얼어 죽은 이웃들을 위해 “친구들이여, 제발 도와주십시오. 세상이 이토록 비정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외쳤고 국민은 그 호소에 응답했다. 진심은 결국 마음을 움직인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 필요한 시기다. 청년은 희망을 잃고, 중년은 생계에 치이고, 노년은 고립 속에서 살아간다.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 미래를 책임질 세대가 절망에 빠져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끝없는 비난과 공방만을 주고받고 있다.
국민은 더 이상 구호나 슬로건에, 또 보여 주기식 이벤트에 감동하지 않는다. 눈앞의 문제에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어떤 정치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국민의 고통은 정치적 싸움의 배경으로 소비된다. 이 무너진 신뢰와 반복되는 거짓은 결국 우리 사회의 비극을 낳았다. 국민은 언제까지 희망 없는 정치를 견뎌야 할까.
정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기능적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고통에 공감하며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려는 진심이 필요하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방향을 제시하고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말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날 수 있다.
정치는 말의 예술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담는 예술이다. 이제는 솔직한 인정과 투명한 설명, 책임 있는 응답이 필요한 시대다. 위기일수록 지도자는 말로써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고 국민을 위로하며 길을 열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며 현장에서 함께 서는 일이다. 그것이 진심의 시작이며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곧 대선이 다가온다.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전략이 아니라 진심이다. 국민의 상처를 진심으로 안을 수 있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를 다시 이어줄 수 있는 지도자. 나는 그런 ‘위로의 대통령’을 원한다. 지금 간절히 그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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