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폭삭 속앗수다, 아주 수고했어요

이승기 ㈔아리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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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종영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큰 인기를 끌다 보니 제주말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어떤 이는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생각하다가 ‘무척 수고 많았다’라는 뜻을 알고는 실없이 웃기도 한다. 폭싹이 ‘아주 많다’는 뜻은 이미 알고 있으니 ‘속앗다’의 우리말 뿌리를 찾아보자.

 

먼저 ‘속’에 대해 알아보자. ①‘속’은 ‘겉과 속’과 같이 쓴다. 둘러싸여 있어 알 수 없는 안쪽 부분이 ‘속’이다. 사람으로 둘러 싸인 것은 ‘몸 속’, ‘마음 속’, ‘머릿속’ 등으로 쓰인다. 그래서 ‘속보였다’, ‘속닥속닥’과 같이 쓰여 왔다. 여기서는 ‘몸속’만을 생각해 보자.

 

②‘몸속’은 뱃속을 말하기도 한다. 뱃속에는 창자가 있다. ‘속이 더부룩하다’, ‘속창아리 없는’ 등과 같이 쓴다. ③감추고 있던 마음의 속내를 들키면 ‘속보였다’, ‘속 뺏겼다’라 한다. ④식물을 심어놓고 너무 배게 자라면 ‘솎아준다’. 속에 숨은 작은 녀석들을 찾아내어 ᄀᆞᆺ는(뽑아내거나 잘라내는) 것을 ‘속갓다’고 말하던 것이 ‘솎았다’가 됐다. ⑤몸속이나 뱃속에 있는 창자는 ‘애’로도 쓴다. 홍어의 내장을 탕으로 끓인 것을 ‘홍어애탕’으로 부른다. 속창자까지 힘을 쓰면 ‘애쓴다’, 속창자가 닳아질 정도로 힘쓰면 ‘애닳다’, 속창자가 타오를 정도로 힘쓰면 ‘애타다’, 속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힘쓰면 ‘애끊는다’, 속창자가 끓어오를 듯 답답하면 ‘애끓는다’고 한다. 애간장에서의 ‘간’이 넓혀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엔 ‘앗’이다. ①남의 것을 빼앗거나 가로채는 것을 ‘앗다’라고 한다. ②‘품’을 빼앗은 대신에 돈이나 먹거리를 주던 것이 ‘품앗이’이다. 주인집 아기를 품에 안고 봐주거나, 장작을 팬 뒤 장작단을 품에 안아 날라 주거나, 곡식을 거두고 그 단을 품에 안아 나르는 등의 일들은 품을 쓴다. 이렇게 자신의 품을 팔아 먹거리나 돈을 삯으로 살아가는 것을 ‘품팔이’라 한다. 우리 고유의 무술 택견에서는 자신의 품을 넓히며 밟아가는 것을 ‘품밟기’라 한다.

 

‘속을 앗는’, ‘속앗다’에서는 몸속의 창자까지 힘쓰도록 일을 시킨다. 품속이나 마음속을 빼앗게 된다. ①사람의 마음을 속이는 ‘속았다’는 마음이나 머릿속을 빼앗는 ‘속앗다’가 달라진 말이다. ②드라마 제목처럼 둘 다 ‘속았다’로 써도 되겠지만 몸속을 빼앗는 일은 서로 구분하기 위해서도 ‘속앗다’로 썼으면 좋겠다.

 

이번엔 ‘수고하다’에 대해 알아보자. ‘수고’가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으로 생각해보자. ‘수’를 높다는 뜻(수수, 세수, 수더분하다, 수수하다, 독수리 등)으로, ‘고’를 고기나 뼈를 곱게 고아내어 푹 삶아서 풀어지는 것(고다, 고요하다, 고즈넉하다, 고두밥, 고드름, 고운 옷 등)으로 생각한다면 ‘수고하다’는 “몸속이 많이(높게) 고아질 정도로 힘들게 일하다”는 뜻이다.

 

‘속앗다’, ‘애썼다’, ‘수고했다’는 말들은 제주말이 옛 우리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예다. 턱걸이를 하면서 ‘배치기’로 속 힘을 쓰고, 팔씨름을 하면서 배에서 나오는 뱃심과 뱃짱을 부린다면 이제 제주말에 옛말이 많이 남아있는 역사도 찾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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