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CAC 장병 이성근·송선찬씨 전투 현장 50년 방치 본보 보도 접해 “전적비 세워… 후손에 의미 전할 것”
파주 진동면 용산리 ‘임진강 9·19대첩’ 주역들이 57년 만에 만나 “여생을 전적비 설치 등 안보역사현장 조성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미2사단 카투사 장병들로 조직된 대간첩중대(CAC)가 무장공비 5명을 섬멸했지만 현장은 기념비조차 없이 방치(경기일보 2023년 9월18·20·27일자 10면)됐다.
13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일 서울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당시 CAC 이성근 5소대장(83·당시 중위·육사 21기 예비역 대령)과 송선찬 4소대장(83·당시 중위 갑종 190기)이 만났다. 대한민국카투사전우회(KVA) 주선으로 ‘임진강 9 ·19대첩’ 이후 57년 만이다.
당시 작전에 함께 참여했던 이번생 1소대장은 몸이 불편해 합류하지 못했다. 이항수 3소대장(당시 중위)는 고인이 됐고 김종태 2소대장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성근·송선찬씨의 만남은 화랑무공훈장이 시발점이 됐다. 송씨가 아내와 찍은 사진에서 우연히 그의 사위(송승용씨)가 훈장문구 속에 ‘임진강 9·19 대첩’의 CAC 등 용어를 발견했다.
인터넷 검색과정에서 ‘임진강 9·19 대첩’ 실체와 제55주년 기념 행사를 확인한 데 이어 수소문 끝에 이성근 당시 소대장과 극적으로 연결돼 만난 것이다.
이씨 등은 “2명(김상훈·박만득 병장)의 안타까운 희생이 가슴 아프다”며 “‘임진강 9·19대첩’은 북한이 그동안 대남 침투 방식을 육상에서 해상침투와 땅굴침투 등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첩이라고 불리는 이유”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꾼 ‘임진강 9·19대첩’ 현장을 꼭 가보고 싶다”며 “현장이 현재 콩밭으로 50여년째 방치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전적비 등을 세워 후손들에게 안보 중요성을 일깨우는 등 잊혀지지 않는 전투로 각인시키는 일이 마지막 임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임진강 9·19대첩 이후 당시 캐그윈 미2사단장은 봉일천 캠프하우즈에서 CAC에 공로 표창장 수여, 한국 정부는 화랑무공훈장등으로 격려했다.
영자신문인 인디언헤드(INDIAN HEAD)는 1968년 9월26일자에 “CAC는 공세를 퍼붓는 북한 무장공비 침투조를 사살하고 부상을 입혔다”고 머릿기사로 다루며 이 작전을 집중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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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없이 사라진 파주 용산리 임진강 ‘9·19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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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만에… 파주 ‘9·19 대첩’ 첫 기념식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3091958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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