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배 디지털뉴스팀장
여름방학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들과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기성세대라면 공감할 만한 그 시절 방학 풍경이다. 그때도 더웠지만 골목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후 뙤약볕 아래서도 친구들과 뛰어놀며 아이스크림 하나면 더위는 금세 잊었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그대로 맞으며 마냥 즐거웠다. 그때 여름방학은 더위도 그저 즐거운 놀잇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30도만 넘어도 덥다고 하던 여름은 이제 35도를 훌쩍 넘나드는 폭염의 계절이 됐다. 툭하면 폭염특보가 울리고 국지성 폭우가 쏟아진다는 긴급재난문자는 일상이 됐다.
골목에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골목은 뜨거운 열기만 머무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방학은 ‘집 안’이라는 공간에서 디지털 기기와 보내는 시간으로 변했다. 폭염과 폭우의 위험이 도사리는 골목 대신 안전하고 시원한 집과 건물 안이 놀이터가 됐다.
친구들과 뛰어놀며 배우던 사회성과 감정적 교류는 이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이뤄진다. 온라인 게임을 하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거나 소비하며 직접 몸을 움직이는 활동 대신 디지털 세계에서 가상 체험을 한다.
이러한 변화가 아이들의 삶과 관계 맺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한편으론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는 ‘진짜 놀이터’를 잃은 아이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회도, 기후도 변하고 있다. 이 변화에 무감각하게 적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방학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말이다. 아이들이 다시 골목으로 나와 함께 뛰놀 수 있도록 어른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어릴 적 마음껏 뛰놀던 여름방학을 지금의 아이들도 누릴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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