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억새 이야기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image

문득 어깨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이 풀 앞에 서면 그렇다. 억새 이야기다.

 

사촌뻘인 갈대와는 다르다. 갈대는 문학작품이나 대중가요 등에 곧잘 등장한다. 하지만 억새는 늘 푸대접받는다. 차이는 간단하다. 산이나 언덕 등 마른 곳에서 자라면 억새다. 연못이나 갯벌 등 습한 곳에서 서식하면 갈대다.

 

그런 와중에 돋보이는 시가 눈에 띈다. “정확히는 해안이 아니었어/북해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능선/그 언덕에 핀 지천의 은빛 억새꽃이/며칠째 메아리의 날개를 내게 팔았지/저녁 바람을 만나는 억새의 황홀을 정말 아니?”. 마종기 시인의 ‘북해의 억새’다.

 

억새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자.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1~2m 남짓하다. 뿌리 줄기는 모여 나고 굵으면서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줄 모양이다. 끝이 갈수록 뾰족해지고 가장자리는 까칠까칠하다. 꽃은 9월 줄기 끝에 부채꼴이나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작은 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꽃차례 길이는 10~30㎝다.

 

최근 억새가 8월의 정원식물로 선정됐다. 반갑다. 국립수목원의 결정이다. 이삭이 고요하고 우아한 정원 경관을 연출한다는 이유다. 여러 포기를 모아 심으면 정원 공간을 자연스럽게 채울 수도 있다. 꽃이 활짝 피면 하얀 구름이 정원 위에 내려앉은 듯한 풍광도 연출한다.

 

키우기도 쉽다. 물이 잘 빠지는 흙에 심고 식물 사이에 약 30㎝ 간격을 두는 게 좋다. 그래야 땅속줄기(뿌리줄기)를 통해 해마다 늘어나는 억새를 잘 관리할 수 있어서다. 처음 심을 때는 물을 충분히 줘야 하지만 뿌리가 자리를 잡은 뒤에는 약간 건조한 환경이 좋다.

 

한국의 자연을 대표하는 식물로 정원에 우아한 경관미를 더할 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에 서식처도 제공하는 등 더불어 사는 생태적 가치도 뛰어나다.

 

입추가 지났고 곧 말복이니 무더위도 한풀 꺾이지 않을까. 억새는 해마다 이맘때면 들녘에서 벗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헹가래를 친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