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자춘추/ 네 덕 내 탓
/여순호(경기도여성회관 관장)
평소 존경하는 서예계의 대가 소당 이수덕 선생께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수덕 700전’을 열어 이를 관람하게 되었다. 많은 작품들 중 나는 한 작품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네덕 내탓’이라는 작품이다. 나는 한참을 그 글을 음미해 보았다. 대부분 ‘내 탓이요’는 잘 쓰지만 ‘네덕’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날부터 지금까지 내 스스로 잘 살아가는 것 같아도 결과는 남에 의해서 사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잘못된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안하다. 엄지손가락을 나한데 돌리면 마음이 편하지만, 검지를 남한데 돌리면 속상하고 불쾌하다. 그럴 수가 있느냐하면서 화가 난다. 손가락 방향에 따라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나의 큰 탓이옵니다”하며 세 번 가슴을 치며 음송을 한다. 매번 미사 때마다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하지만 무엇이 내 탓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시련이 왔다. 공직생활 29년이 되던 지난 1995년에 나와 직접 관계없는 일로 해임을 당한 것이다. 그 후 행정심판으로 복직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서운한 일이 많았다.
나는 미사 봉헌을 하기 위하여 성당을 찾았다. 미사 중에 ‘내 탓이요’를 하며 생각했다. 그래 바로 내 탓이구나. 누구를 원망하고 남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내 탓이구나. 왜냐하면 나의 부족한 탓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모두 내 주변에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웠을 때 다시 공직생활을 하게 된 것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늘 글도 쓰는 것이 아닐까. 이번 기회에 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그 분들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또한 남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누구든지 ‘내 덕’에 사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지만 우리는 ‘네 덕’에 살고있는 것이다. 이 가을,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서 ‘네덕 내탓’을 가슴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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