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국적기업의 떠남

기고/다국적기업의 떠남

허범도(경기중소기업청장)

매일 중소기업체를 방문하다보면 희망에 찬 확장(Expansion)준공(New-building)의 현장도 보지만 며칠 혹은 몇개월 후면 문을 닫거나(Closing) 철수(Withdrawal)할 기업도 만나게 된다. 최근 안산에 있는 N이라는 회사를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앞뜰에 잔디와 나무를 심어 환경과 조경이 눈에 띄어 끌려 들어가듯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분위기에 지나는 사람도 없어, 수위실에 이야기하고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가서 깨끗한 실내화로 갈아신고 공장장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그 회사는 다국적 기업으로 전문의약품을 연구, 개발, 생산 해내는 제약회사였다. 공장장과 회사의 제품내용, 전문성 및 여러분야 인력수급의 어려움 등을 얘기해 나가는데, 나중에는 급기야 이 회사가 연말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이미 작년 연말에 철수 방침이 결정되고, 금년 2월에는 구체적인 인력 퇴직계획까지 발표하여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정부는 활발한 외자유치활동을 펼쳐 나가면서 외국의 하이텍 분야 특히 생명공학, 첨단과학, 고부가치기술 등을 우리나에 유치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제안하고, 각종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등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는데, 또 한편에서는 소리없이 외자철수작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17년이란 기간 우리나라 제약산업에 뛰어들고 나름대로 기술의 개발, 고용의 촉진, 지역사회 발전의 일익을 담당해 온 유명기업이 있기 때문에 한편 아쉽기 짝이없고, 또 한편 그 철수의 이유나 배경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되는데, 첫째 이 분야 제약의 특성상 미국 FDA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할 시점이 왔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미루어왔던 고가의 설비투자, 고급인력의 확충등 대규모 신규투자와 비용발생이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둘째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생산성(Productivity)을 초과하는 임금구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매력적인 투자처로서의 이점을 이미 상실했다는 점이었다. 셋째는 시장의 개방으로 국경없는 무역환경(borderless trade)시대로 접어들면서 현지생산의 이점이 점차 축소되어 본사에서 생산, 수입되어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WTO이후 우리나라의 각종 관세장벽(Tariff

barrier)과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이 제거되면서, 각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의 외자유치정책은 지금 하나의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때마침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가 개설된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중국의 각성, 각시에서 경쟁적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전용공단을 만들고, 공무원들이 세일즈맨이 되어 우리의 기업들을 데려가기 위해 파상공세를 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세계화(Globallization)와 현지화 (Locallization)에 거의 성공하고 착근(着根)되었다고 믿었던 한 다국적 기업이 내 고장을 떠난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공장을 나서면서 공장장과 회사직원들은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이 회사의 대표에게 그간의 고마움을 표하고 이번에는 본사결정으로 철수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도록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당부를 하고 그 공장을 떠나는 필자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우리 다함께 시야를 넓혀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로컬라이제이션의 새로운 환경속에 눈을 크게 뜨자. 큰 스케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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