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시어머니

/여순호(경기도여성회관장)

이 해가 지나면 시어머니께서 90세가 되신다.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것을 뵐 때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시어머니는 10남매를 혼자 기르셨다. 40을 갓 넘어 막내 시누이 첫 돌날이 시아버지 삼우제 날이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돌떡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역시 시어머니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어머니는 적은 농사를 지으면서 10남매를 2년차로 학교에 보냈으니 보통 어머니 같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나와의 첫 만남은 1974년 늦은 가을이었다. 결혼 문제로 만나 뵙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를 물으시더니, 결혼을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그 자리에서 대답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황하며 “제가 결혼을 하고싶어도 제 마음대로 못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가끔 처음 만나자마자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느냐고 하면, 내 아들 결혼 문제인데 내가 하고싶은 말을 왜 못하느냐고 웃으신다.

어머니는 가식이 전혀 없는 분이다. 그래서 건강하신 것 같다. 어머니와 나는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셋째인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내 일을 많이 도와 주신다. 나는 성당과 목욕탕을 어머니와 함께 가곤 하는데 딸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딸처럼 보인다니 기분이 좋다.

어머니와 나는 벽이 없다. 서로 할 말은 하고 살기 때문에 오해가 없다. 가끔 저녁이면 “어머니 약주 한잔 하시겠어요”라고 말씀드리면,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구나” 하시면서 식탁에 앉으신다. 어머니도 약주를 하고 싶으면 “얘야 술 한잔 할래”한다. 그러면 나도 “어머니 약주 잡수시고 싶으시군요”하며 한잔씩 나누곤 한다. 그러다가도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단호한 말씀도 하신다. 그럴 때는 “역시 시어머니는 시어머님이세요”라고 하면 “너도 며느리는 며느리더라”하신다. 이때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소리내어 웃는다. 이렇게 살다보니 다정한 모녀 같은 정을 느끼며 산다. 어머니께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 결혼하고 증손을 볼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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