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자춘추/엄부자모(嚴父慈母)

경기천자춘추/엄부자모(嚴父慈母)

김진춘(경기도 교육위원)

초등학교 때 또래들과 함께 들판에 나가 소 풀을 뜯기며 신바람 나게 뛰어 놀다가 참외밭에 들어가 참외서리를 하였다. 한사람이 서너개씩 따 가지고, 도랑에 숨어서 정신없이 먹다가 주인 아주머니한테 발각되었다. 잘못했노라고 용서를 빌었으나 주인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도둑맞은 참외값까지 물어 내라며 막무가내였다.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후회를 했지만,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사실을 동네에서 엄하기로 소문난 아버지께서 알게 되면 자식에 대한 실망감에 집에서 쫓겨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집에 소를 끌고 돌아와 소마답에 매어 놓는 순간 집 앞마당에서 참외밭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 아버지한테 댁의 아들이 참외밭을 망쳐 놓았으니 참외값을 물어내라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큰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너무 황당하여 살금살금 도망쳐 친구네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저녁밥도 굶은 채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이 잠든 사이 몰래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께서 “얘 이녀석아! 일어나, 밥먹고 학교 가야지.”하고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식구들이 아침 밥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젠 죽었구나!’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아버지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허둥지둥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언제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으나, 아버지께서는 아무말 없이 식사를 다 마치시고는 집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네놈 때문에 집안 망신당했다고 창피해서 낯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걱정을 하신다.

이렇게 관용과 사랑으로 한없이 인자하셨던 나의 어머니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고, 그렇게도 엄하셨던 아버지는 지금 졸수(卒壽·90세)가 넘으셨는데도 이순(耳順·60)이 지나 고희(古稀·70)가 되어 가는 자식들에게 가정교육의 부재를 한탄하신다.

예부터 유교권에 있는 우리나라의 가정교육 모델은 엄부자모(嚴父慈母)였다고…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가정은 엄한 아버지로서의 가부장적 권위가 실종되고 모든 것을 관용하고 수용하는 모성의 원리로만 가정교육을 해오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나약하고 버릇없고 질서와 예절을 지킬 줄 모르며 자기 중심적이며,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만연되어 각종 사회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며 말끝을 흐리신다. 그래서 루소는 “가정은 인간교육의 최초의 장”이요, 부모는 “가장 위대한 교육자”라고 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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