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百樂之丈 거문고

60여종의 국악기중 3대 현악기로 가야금·거문고·비파를 꼽는다.

이중 사찰의 벽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비파는 언제부턴가 단절돼 연주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가야금은 섬세하고 아기자기하고 소리가 맑아 여성적인 악기로 알려진 가운데 널리 사랑받고 있다. 가야금 인구가 많이 늘어났으며 이 분야의 발전도 많았다. 기본이 12줄이지만 악기가 다양하게 개량돼 25현까지 음역이 확장,창작음악 및 관현악곡에 폭넓게 연주되고 있다.

이에 반해 거문고는 투박하고 거친 맛이 남성적인 악기로 비유된다.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이 즐겨타던 거문고는 둔탁한 듯 하지만 깊고 그윽함이 매력이다. 소리가 화려하거나 곱지는 않지만 오랜 여운과 울림을 준다.그래서 거문고를 모든 악기의 으뜸이란 뜻으로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일컫기도 했다.

내가 거문고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 맛을 잘 몰랐다.시간이 흐르면서 굵은 6줄에서 흘러 나오는 깊고 장중한 맛이 느껴졌고, ‘아, 이래서 백악지장이라 했구나’하는 것도 실감하게 됐다.

거문고에는 ‘음의 여백’이 있다.해금이나 아쟁처럼 활과 줄의 마찰을 통해 음을 지속시키는 찰현악기와는 달리, 술대를 이용해 줄을 튕기며 소리를 내는 안현악기에 속하는 거문고는 음이 지속되지 않음으로써 공백이 생긴다. 거문고는 바로 이 음의 여백이 매력이고 맛이다.둔탁한 음 하나하나의 여백을 무한한 예술적 상상이나 환상의 선율로 채우던 옛 선비들의 여유와 멋, 이를 생각하면 거문고를 아니 좋아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근래 거문고가 예전만큼 사랑받지 못해 안타까움이 크다. 철로 줄을 만든다거나 개량 악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악기 특성상 변화가 쉽지않고 다른 악기와의 어울림도 많지 않다. 늘 무언가에 쫓겨 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들 또한 거문고의 깊은 맛과 멋을 제대로 감상하기엔 여유가 없는 것 같다.기회가 된다면 거문고의 매력에 푹 빠져볼 것을 권하고 싶다. 깊고 오묘한 뭔가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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