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규(경기대 경영학부 교수)
토정 이지함은 중종 12년부터 선조 11년에 걸쳐 살았던 목은 이색의 6대손이요, 율곡의 친구이다. 토정은 경전과 백가를 섭렵하였고 천문, 지리, 의약, 관상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친구인 史官 안명세가 을사사화로 죽음을 당하고 나서 천하를 주유하면서 살게되었는데, 이때 물산(物産)과 인물을 두루 살피게 되었다. 실학자이며 의병장인 중봉 조헌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고, 포천과 아산에서 현감을 지낼 때는 획기적인 가난구제 방안을 상소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자 곧 사임하였다.
조선은 유교중심의 행동양식이 지배하고 있는 양반관료사회라 할 수 있으며 상업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하대(下待)가 당시 사회에 팽배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의 통치이념이 유교라 하여 신라, 고려의 눈부신 상업정신이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니다. 토정이 씨를 부리고 반계 유형원, 청담 이중환, 농암 유수원, 초정 박제가, 다산 정약용이 그 상업정신의 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양반 상인 토정의 열린 생각은 훗날 청담 이중환 생리론(生利論)에서 꽃핀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이미 바람으로 호흡할 수 없고, 이슬을 마실 수 없으며 깃털을 입을 수 없다. 생업에 종사하여 조선(祖先)과 부모를 공양하고 처자를 거느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무시한다면 실용보다는 공명이 앞서게 되어 도덕과 인의를 말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즉 상업은 사람에게 곡 필요한 활동이며 재이(財利)를 말하는 것이 먹고살기 위한 것이라면 의에 어긋나지 않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의 四民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는 토정의 민본주의적 상업관의 정수이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의 상업관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민본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이득을 얻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록펠러, 카네기도 만년에는 사회환원에 열중하여 어느 정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의 재벌들도 특혜성, 관료성, 부패성을 박차버리고 멋진 선비들의 참다운 상인정신을 만나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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