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쇤 이튿날 오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사무실. 이태섭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어렵게 짜투리 시간을 얻어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넸자 인터뷰 취지를 간파한 이 이사장은 생경하게도 미국의 현대시인 R.프로스트의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잠들기 전에 몇마일을 더 가야 한다네)이라는 싯귀 한 구절로 답변을 대신했다.
40년전 고단했던 미국 유학시절부터 무엇인가를 반드시 해야할 때,그리고 꼭 이뤄야 할 때 마다 이 시를 중얼거리는 습관을 갖게 됐다는 이 이사장은 올해 계획에 대한 화두로 단연 ‘봉사활동’을 꼽았다.
공학박사이자 정치인 출신인 이 이사장은 올 7월이면 생의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된다.7월4일 미국 덴버시에서 열릴 국제라이온스협회 제86차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이다. 라이온스협회는 전세계 190개 국가에 140만명의 회원을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부기구(NGO)이자 봉사단체다.동양권에서는 일본과 태국에 이어 힌국인이 세번째로 추대되는 셈이다.
“기금이 3억달러이고 1년 예산만 5천만달러에 이릅니다.우리나라는 1959년 창설돼 현재 6만5천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국제라이온스쿨럽 회장은 국제적인 거대 조직을 이끄는 자리라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회장은 세계 어느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국가수반을 만날 수 있고, 회장 임기 기간 내내 시카고 본부에는 회장을 배출한 국기가 게양되고 행사때마다 국가를 연주합니다. 저는 회장임기 시작부터 일년동안 국내에는 20일, 해외에서 345일을 보낼 예정입니다. 그만큼 각국을 방문하며 펼쳐야 할 인도주의 봉사활동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 이사장은 벌써부터 본인이 해야할 일을 꿰고 있었다.
라이온스클럽의 주된 봉사활동중 하나는 시각장애에 대한 배려다. 1925년 대회에 참석해 맹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던 헬련 켈러 여사의 정신에 근간을 두고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에 3천만달러를 투자해 지난 5년동안 250만명의 개안수술을 해주었습니다. 10년 계획이니 만큼 남은 5년간 역시 250만명을 대상으로 수술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북한 평양에는 제2부회장으로 있던 지난 해 11월19일부터 23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평야에 안과병원 건립을 위해서 였지요. 6백50만달러를 투자해 지난 해 11월22일 기공식을 했는데 2004년 6월에 개원할 예정입니다.”
이 북한돕기사업의 공로로 이 이사장은 지난 해 12월3일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제정한 ‘2002년 자랑스런 한국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태섭 이사장은 국제라이온스 회장 취임을 끝으로 원자력 문화재단일에는 손을 뗄 생각이다.
라이온스 기구 성격상 외국에서 보내야 하는 업무가 많아 겸직 수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사장은 요즘 원자력 문화재단 마무리 사업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이 이사장은 원자력이 더욱 친숙한 탓에 애정도 상당하다. 장관 재임 시절 국회와 예산 관련 부처를 쫓아다니며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을 증액시키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국내 원자력 연구환경을 한단계 끌어올린 장관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원자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국내에 18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전기의 40% 이상을 원자력 발전소에서 충당하고 있지요. 뿐만아니라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에 이어 세계6위의 원자력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신포에 있는 원전은 우리 기술과 인력을 기반으로 한 한국형 경수로이며 이를 통해 우리 원전기술이 세계적 수준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원자력에 대한 인식은 그러한 기술적, 외형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태섭 이사장의 솔직한 평가이자 ‘고민’이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가져다 주는 혜택보다도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일부 편향적 주장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등 원자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결코 우호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이사장은 홍보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일본의 경우 33개의 원자력 전시관을 통해 일본 국민들은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원자력의 필요성과 편리성을 함께 깨닫게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서울 남산에 있는 교육과학연구원 정도가 고작일뿐 사실상 전무한 실정입니다.예산부족탓이지만 전국 곳곳의 제대로 된 홍보관 건설이 저의 과제이자 우리 문화재단의 역점사업이기도 합니다.”
귀중한 만남 말미에 공학도로서 일생을 보내지 않고 정치를 하게된 동기를 물었다.
이 이사장은 “저는 민족 대비극인 6.25를 겪었던 세대입니다. 작고하신 어머님도 그 당시의 일이지요. 평화롭고 행복된 복지국가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큰 봉사활동이 정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책만 파던 저에게 ’커서 남을 위한 훌륭한 사람이 되라’하시던 어머님의 가르침도 이와 무관치가 않았지요”라고 답을 대신했다.
송기철기자 kcsong@kgib.co.kr
■이태섭 그는...
경기도 화성 출신인 이태섭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사장은 경기중·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뒤 미 MIT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학위 취득은 당시 국내에서 여러가지 화제를 몰고 다녔다. 유학을 떠난지 2년8개월만에 학위를 끝낸데다가 석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흔치 않은 사례를 남겼다. 때문에 당시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고국에 돌아와 공헌해 달라’는 축전까지 받았다.
이 이사장은 경기중·고 6년동안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97점이라는 졸업점수는 경기고 개교 이래 아직도 깬 사람이 없어 본인도 MIT의 영광보다 더욱 자랑스러웠음을 회고하곤 한다.
39세에 정계에 입문해서 과학기술처장관과 정무장관, 4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과학기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남극에 세종기지를 건설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의 절친한 친구로는 경기고 54회 동기생인 오명 한승주 박찬종 유흥수 남재두 윤여준씨 등 정 관계 인사들이 있으며 유흥수 의원과는 사돈지간을 맺고 있다.
송기철기자 kcsong@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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