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인 성공회 수원나눔의집 원장·신부
적자 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강한 것들이 환경의 장애를 넘어서 살아가는 것을 두고 다윈이 그렇게 말했다. 모든 생물들은 환경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다윈의 말에 신뢰를 하는 이들은 사람을 놓고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식량과 땅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인간을 경쟁자로 또는 적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있는 힘을 다해 그들과 싸워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 논리에 서서 서구 열강들이 근대에 동양과 아프리카에 침략을 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그 힘의 논리로 세상을 평정하려는 경향은 국제정치의 현장에서 지금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연자원이 거의 없고 인구가 밀집된 영국에 살았던 다윈으로서는 적자생존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활하고 인구가 드문 나라인 러시아에서 살았던 비평가 크로포트킨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은 한정된 세상에서 제한된 재화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거친 환경과 싸우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것이다.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가 밀집된 우리나라는 영국이나 러시아와는 다른 환경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자생존의 원리만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나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 교육, 심지어는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사회복지와 종교의 영역에서조차도 이러한 적자생존 방식의 경쟁 논리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윈의 말처럼 적자만이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는 건강한 사회라면 이 적자는 이웃과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며 서로를 보호하고 도움을 주는데 참여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결코 약자 위에 힘을 행사하는 강한 사람이나 도와줄 동료도 없이 혼자 남아 있는 사람은 아니다. 상호협력과 연대는 경쟁 보다 더 중요한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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