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작가란 명칭은 미술에 있어 임의로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고 그 경계의 날을 세웠을 때 가능한데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거나 모호하다. 반면 여전히 서울을 중심을 해서 이루어지는 미술계 상황을 부정할 수 없는 시점에서 서울이외의 지역화단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아우르는 의미로 지역작가란 이름을 쓴다고 생각한다. 그럼 지역미술이 있고 지역작가라고 부를만한 정체성 같은 것이 존재하느냐를 물어 보아야 한다. 나로서는 무척 회의적이다. 지역화단 자체가 상당히 협소하고 동시대미술의 여러 흐름과 논리에 대해 무지하거나 애써 외면 혹은 스스로를 울타리 둘러치면서 완강하게 자기 세력의 틀을 고수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각 지방미협이라거나 단체들 대부분이 그런 후진적 사고와 행태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지역미술과 화단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지역을 거점으로 해서 밥그릇을 챙기는 집단이 서식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틀 안에 들어가 순응하고 동조하면 그 지역에서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거나 할 것이다.
아울러 특정한 화풍과 방법론만이 강제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리고 그것이 그 지역의 독특한 화풍이고 정체성인양 강변된다. 그것은 사실 미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습관이다. 아울러 지역화단이란 것이 워낙 영세하다보니깐 그림을 팔고 그것으로 작가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이들은 무척 드물다. 그저 대학에 재직하고 있거나 지역유지들과 친분을 쌓고 있는 작가들, 혹은 한정된 지역에 있는 콜렉터들이 좋아할 만한 수준의 장식적인 구상미술이나 무리 없는 인테리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이들만이 먹고 살만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술이 거의 다 공예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황이 이러니 작가들 역시 먹고살자면 그런 작품들을 의식적으로 그려내거나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지역화단에서 목소리 큰 사람들은 일부 대학교수작가들 내지 팔리는 작품을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문제는 지역미술계가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비평문화의 정착, 미술관과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자체가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져야 하며(여기에는 보다 친절한 설명과 이해, 현실적인 미술계의 문제점, 지역미술계가 안고 있는 상황과 연계된 전시가 요청된다) 미술품 구입과 공공조형물들의 경우 철저한 심사와 객관적인 작품의 질에 대한 요구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비평의 활성화와 의미 있는 기획전시들이 자주 선보여서 미술에 대한 안목과 사유를 교육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어느 누가 어느 자리에서 그 일을 하느냐가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다. 이 문제만큼은 지역성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 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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