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느 작은 기도모임에서 돌아가며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한 교우가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이사야45:1)라는 구절의 ‘항복’을 ‘행복’으로 천연덕스럽게 바꿔 읽었다. 잘못 읽었지만 그 순간 섬광처럼 내 안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그래, 항복하면 행복해지지”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한용운의 <복종> 중에서- 복종>
어떤 외부적인 강요나 물리적인 힘에 의해 복종하는 것은 비굴하고 불행한 일이지만, 사랑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복종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행복하다. 행여 치명적인 손해와 고통이 수반된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죽음 앞에 설지라도 그 모든 것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하여 참된 사랑은 복종을 통해서만 얻어지고, 사랑의 대상 앞에 자신을 철저히 항복시키는 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무엇을 항복시켜야 할까? ‘에고’이다. 자아를 죽이고 에고를 항복시켜야 한다. 오늘날 현대인의 불행은 욕망과 소유에 근거한 이기적인 자기 중심성 때문이다. 욕망투성이인 아상, 거짓된 자아는 허깨비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아상을 붙들고 거짓된 자아에 속으면서 서로 비교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에 상처는 깊어지고 한은 쌓여만 간다. 그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인간은 서서히 파괴되고 불행해진다. 아상을 항복시키지 않는 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아상 뿐 아니라 존재의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는 더 큰 사랑의 신비속으로 들어갈 순 없을까. 영원한 사랑의 불길 속에 나를 통째로 내던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 안에서 당신 술에/ 취하는 일 말고는/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내 삶을 당신께 들어 바치는 데는/ 그 것을 잃어버리려는 것 말고/ 다른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다만 당신을 알고/ 그리고 사라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루미의 <항복> 중에서- 항복>
온 우주에 진초록 푸르름으로 가득한 이 아름다운 계절에 항복하면 행복해지는 참사랑의 진리를 온몸으로 깨우쳐 보라. “항복하면 행복하다!”
/장병용.수원 등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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